▶ 미래에 일들을 현재로 시각화 ‘퓨처 메모리’ 강조,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전파
▶ 21세 도미, 온갖 고생 끝에 도장 차려, 열여섯명 아들같은 제자들과 한가족
태권도 공인 10단으로 세계 최초로 여성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김태연 회장은 여성 태권도인의 전설로 통한다. 지난 4월6일 시카고에서 열린 미태권도고단자회(US Taekwondo Grandmasters Society) 행사에서 김수곤 회장으로부터 명예의 전당 및 평생 태권도인상(Lifetime Archievement Award)을 수상하고 있다.
TYK 그룹 김태연 회장의 삶과 철학
성공의 잣대는 무엇인가. 성공한 사람은 소망과 지혜의 전도자여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소망을 갖게 하고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는 지경에 이르면 바로 성공한 삶이 된다. 단지 돈이나 지위 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다. TYK그룹 김태연 회장은 분명 성공한 기업인이다. 주류 사회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을 키워냈다. 그것도 실리콘밸리에서 최첨단 기술로 이뤄낸 열매다. 하지만 그녀는 돈을 많이 벌고 유명 인사가 되는 것으로 인생을 채우지 않는다. 끊임없이 타인을 챙기는 열정이 김 회장을 성공한 삶으로 이끈다. 격려하고 이해하며 소망을 부추기고, 경험과 통찰력을 담아 지혜를 건넨다.
지난해 봄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위치한 산타클라라 컨밴션센터에 세계를 움직이는 첨단 기술의 대표선수들이 모였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야후 등 기라성 같은 기업에서 1,500명의 직원들이 여성 강연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자리의 기조 연설자는 바로 김태연 회장이었다.
“리더십에는 비전과 소통이 중요합니다. 비전을 크게 가지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Future Memory’를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경영자 혼자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며 직원들과 같이 가져야 합니다. 경영자가 제시한 미래의 비전을 직원들이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회사의 성장과 직원 개개인의 성장은 놀랍도록 폭발적일 것입니다.”
‘Future Memory’는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현재의 시각으로 두뇌에 생성시킨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김회장은 강연을 이어갔다.
“그러나 경영자가 직원들에게는 무조건 내 회사, 내 일 처럼 하라고 요구하면, 그건 경영자의 욕심이요 모순입니다. 직원들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라 하고 경영자는 자기 식구들과 호의호식을 하며 낭비를 한다면 그건 의리없는 정치인 수준 밖에 안되는 경영자입니다.”
이날 강연장에는 산호세머큐리 신문의 살 피자로 기자도 참석했다. 북가주 지역에서 내로라 하는 저명한 언론인이다. 그는 김 회장의 강연을 “마치 원더우먼 처럼 강렬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런 경영자 아래서 그동안 일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을 뿐더러, 배가 침몰하는 위기가 와도 누구도 도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논법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영업자와 종업원, 작은 개인 클리닉의 원장과 몇명 안되는 직원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Future Memory’와 더불어 김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인생과 사업의 원칙이 있다. 바로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이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면 왜 나는 못하겠는가’라는 의미이다. 한국 MBC와 KBS 방송에 김 회장의 인생 여정과 사업을 소개하는 특집 프로그램이 잇따라 방영되면서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Can Do’(할 수 있다) 정신이 유행했다.
그러자 한국에서도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김 회장은 하루 세 시간도 자지 못하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공군본부, 육군사관학교, 서울시청, 강원도청, 경북도청, 제주도청, 광주시청, 진주시청 등 지방자체단체를 비롯해 숙명여대, 경산여고, 진주 문화방송, 강남 메리옷트호텔, 한국화장품, 삼성코닝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소망과 지혜를 나눴다.
“한마디로 ‘Can Do’ 정신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 일이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실패를 경험하고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돼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다시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 힘든 건강상태, 더 외로운 환경에 있는 사람도 일어나는데, ‘왜 나라고 못해! 나도 할 수 있다!’ 용기와 희망을 스스로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김 회장은 특히 이민 초기 한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하면, 그 작은 시작이 후일 커다란 성공의 씨앗이 된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는 김 회장에게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뉴욕에서 열린 ‘스티비 어워드’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스티비 어워드’는 비즈니스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그녀의 회사인 ‘라이트하우스 월드와이드 솔루션’은 이 자리에서 ‘올해의 최고 기술상’을 거머쥐었다. 주류 언론이 김 회장과 회사를 크게 보도한 건 물론이다. 지난 여름에는 하버드대학교 법대에서 열린 비즈니스 CEO를 위한 세미나의 주제 강사를 맡기도 했다. 또 실리콘밸리 최고 경영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10년이 넘게 경북 상주 여중생 초청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여중생 30명을 초청해 2주 동안 인성 훈련, 운동, 견학을 시켜준다. 학생들은 구글, 테슬라, 애플, 페이스북, 야후 등 첨단 기업과 스탠포드대학교 등을 둘러 본다. 지난해에는 오리건에 위치한 자신의 와이너리로 학생들을 불러 대학교와 박물관을 둘러보고 오리건 주 부지사와 만남도 가졌다. 또 김 회장과 학생들은 강변에 앉아 동심어린 대화를 나눴다.
김 회장의 집은 미 전역에서 땅값 비싸기로 1, 2위를 다투는 북가주에서 150에이커에 달하는 대저택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실리콘밸리가 한눈에 내다 보인다. 오리건 주 남단 메드포드 근처 애플게이트 지역에는 500에이커 크기의 와이너리도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150톤 정도의 와인이 생산된다. 와인을 고급 가죽 케이스에 담아 싯가 180~240달러에 해당하는 선물을 준비해 전량 무료로 증정하고 있다.
와이너리에 있는 산에는 전망대도 꾸며 놓았다. 산정상에는 초대형 십자가를 세웠다.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정상까지 포크레인을 4대나 동원하는 대공사를 치뤘다. 근처를 지나가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십자가에서 반사되는 빛을 보고 고도를 가늠할 수 있다고 감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곳을 ‘홀리랜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김 회장은 아침마다 해를 맞이하며 하는 운동을 건강의 비결로 소개한다. 출장을 가서도 해가 뜨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자기 몸을 성전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성전같이 귀하게 취급해 주면 몸은 저절로 따라와 주지요. 몸을 혹사시켰으면 쉬도록 해 줘야죠. 늘 긍정적으로 좋은 생각을 하면 주름살도 예쁘게 자리 잡는 것 같아요. 특히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질투하고 미워하고 남의 말을 하거나, 욕심을 내는 사람들은 결국 흉하게 늙잖아요. 가진 자가 거드름을 피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반갑지 않은 손님인 병이 오고요.”
김 회장이 젊은 세대에게 주는 제언이 하나 있다. 인터넷 사용에 대한 지혜다. 실리콘밸리에서 우뚝 선 인생 선배의 조언이니 귀 담아 들을 만 하다.
“지나칠 정도로 풍만한 인터넷 정보가 오히려 개인 성장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른 정보도 있지만 그릇된 정보가 더 판을 치고 있어요. 자신이 굳게 마음을 먹고 결심하는 일에 저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죠. 인터넷보다는 경험이 많은 선배의 조언이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김태연 회장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준 태권도를 통해 지금도 심신을 연마하고 있다.
김태연 회장은 지난해 45주년 로스앤젤레스 한인축제에 그랜드마샬로 참가했다. 사실상 LA한인사회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셈이다. 김 회장은 “4일간 행사 일정이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다”고 말한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올해 75세가 됐지만 김 회장의 모습은 40대 후반에 머물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정월 초하루 제사가 한창인 종갓집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모두 아들을 기대하다 제사 도중 딸이 태어나자 온 가문이 실망했다. 그 바람에 오히려 ‘재수없는 딸’이라고 호되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고 김 회장은 회고한다.
홀대를 받던 그녀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은 태권도를 만난 것이다. 마당에서 삼촌 둘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졸라대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공인 10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21세에 미국에 와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조그만 창고에서 태권도 도장을 채렸다. 도장에 세 번씩 불을 지르는 등 주변의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김 회장은 첫째 스캇 솔튼, 둘째 마이클 팰, 막내 토마스 샌더스 세 아들을 두고 있다. 모두 입양한 자식이다. 이들은 김 회장의 회사 일을 돕고 있다. 그녀는 회사의 중요한 신기술을 개발할 때면 아들들을 대학에 보내 직접 교육을 받게 한다. 사업 현장에서 기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키우는 김 회장의 독특한 자식 훈련 방식이다.
김 회장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던 시절에도 청소년 선도 봉사를 열심히 벌였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때 사제간으로 만난 제자들이 이제는 어머니의 아들로 가족을 이뤘다. 이렇게 맺어진 가족이 모두 열여섯 명이다.
오리건 주에 있는 와이너리 농장에서 가족 모임을 가질 때면 온통 한국식 농촌 음식이 차려진다. 쌈장, 깡된장, 수제비, 쭈구미 , 총각무 등이 밥상에 오른다. 독일계인 큰 며느리 안젤라는 된장찌게를 끓이고 부추전을 지진다.
지난 2001년 김대중 태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희호 여사는 김 회장 가족과 오찬을 나누고 성경의 이사야서 60장이 새겨진 도자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 일행이 공항 귀빈실에 도착하자 외부무 직원이 안내하러 나왔다. 몽골 대사를 지내고 지금은 퇴임한 김원태 대사였다. 김 대사는 김 회장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긴가민가 했다.
김 대사가 물었다. “혹시 김기태를 아시는지요?” 김 회장이 “그분은 저의 삼촌인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 대사가 “바로 제가 형인 김원태입니다”라고 밝혔다. 삼촌도 조카도 오십이 넘어 마주친 우연한 만남에서 선뜻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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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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