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세 위주 한글교육, 이제 외국어교육으로 전환 필요

통합 한국학교 버지니아 캠퍼스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삼일절에 대해 배우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의 연륜이 깊어지고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이 거의 끊김에 따라 차세대 뿌리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학교의 교육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영어권 한인 2세·3세 학생들이 한국학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한국학교의 교육 방향과 교사 양성 체계 또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Korean as a Heritage/Foreign Language)’ 교육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학교의 지형변화와 대책, 미래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현지화’ 영어권 2세 교사 양성이 최우선 과제
언어수준에 맞는 교재 개발·교수법 연구도 절실
■한국학교 현황
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협의회(WAKS, 회장 정광미)는 한때 83개 회원학교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현재는 75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학생 수 역시 학교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영어권 학생들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흐름은 미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워싱턴 통합한국학교에서도 감지된다. 통합한국학교 메릴랜드 캠퍼스(교장 추성희)의 현재 신입생 중 한국어권과 영어권 가정의 비율은 3대7 정도로, 영어권이 압도적이다. 버지니아 캠퍼스(교장 이혜경)도 미주반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16명 중 140명이 영어권으로 파악돼 64% 이상이 영어권이다.
휄로쉽 한국학교(교장 정광미)는 현재 운영 중인 13개 학급 가운데 30%의 학생들이 영어만 사용하는 가정(English-speaking households) 출신으로 파악되고 있다.
추성희 교장은 “특히 부모 중 한 쪽만 한국어를 구사하거나 양쪽 다 영어가 더 편한 가정이 급증하고 있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맞춤형 교육환경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휄로쉽 한국학교 학생들이 고운 한복차림으로 서예에 몰두하고 있다.
■영어권 학생 증가와 교육 현장의 변화
휄로쉽한국학교는 4년 전부터 영어권 학생들을 위한 태극 1, 2, 3, 4반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반들은 한국어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한국 문화와 언어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영어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변화는 휄로쉽한국학교만의 현상이 아니다. 워싱턴 지역의 많은 한국학교에서도 영어권 학생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광미 회장은 “현재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앞으로의 한국학교는 한국어 실력 향상뿐 아니라 학생들이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어권 교사 양성
학생들의 변화와 함께 교사의 구성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1세대 교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는 한국학교를 졸업한 영어권 2세 교사들이 교육 현장의 중요한 자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영어권 교사 양성과 재교육 체계는 아직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영어권 교사들을 위한 영어 기반 교사 연수, 이중언어(Bilingual) 연수 프로그램, 영어권 교사 멘토링 시스템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30여년째 한국학교 교육에 헌신중인 추성희 교장은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현지 교육 문화를 잘 이해하는 ‘이중언어 교사’ 확보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즉 단순한 인력 충원을 넘어, ‘현지화된 한국어 교육 전문가’를 육성하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사 역량 강화 개발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통합 한국학교 메릴랜드 캠퍼스 학생들이 애국가 부르기 대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교재 개발·교수법 연구 절실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 학생들의 언어 수준에 맞는 교재 개발과 교수법 연구도 절실히 요구된다.
이혜경 교장은 “기존 교재는 3, 4세대나 영어권 입문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양이 많고 문화적 배경 설명이 부족해 진입 장벽이 높다. 따라서 교사들이 매번 별도의 부교재를 자체 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추성희 교장 역시 “기존의 교재만으로는 부족해 통합 한국학교 메릴랜드 캠퍼스에서는 수준별 맞춤 부교재 개발과 현지 실정에 맞는 디지털 콘텐츠를 혼합(Blended Learning)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 실정에 맞는 교수법 연구도 당면과제다. 한인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한국어 능력을 미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함으로써, 한국어 학습의 동기를 부여하고 한국학교 교육의 공신력을 확고히 다져 나아가게 하기 위한 교수법 연구가 활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학교의 미래 방향
한국학교는 차세대 한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글로벌 사회에서 문화적 자산을 가진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정광미 회장은 “세대교체와 언어 환경의 변화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때 한국학교는 앞으로도 미국 내 한인 차세대의 정체성 교육을 이끄는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어권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한국어 교육과정 개발, 영어권 2세 교사 양성 및 재교육 확대, 이중언어 교육 자료 및 디지털 콘텐츠 개발, 한국 문화·역사·전통 교육 강화, 차세대 리더십 교육 확대, 한국학교 졸업생들이 다시 교사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 마련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추성희 교장은 “한국학교는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곳을 넘어, 차세대들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정립하고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실질적인 전략으로 미 공립학교 시스템 내에서 공식 인증을 받는 ‘이중언어 인증제(Seal of Biliteracy)’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혜경 교장은 “한국어 교육은 한국어 공부와 더불어 한국 문화 체험을 통해 세계속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확립하도록 이끄는 뿌리 교육이 핵심이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춘 커리큘럼, 듣기, 말하기 중심의 콘텐츠, 다양한 교재 연구, 교사 처우 개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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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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