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흥섭·장유빈씨 부부, 남북 다른 배경 극복 가정 이뤄 행복한 ‘통일’ 실현
▶ 장씨, 두번 탈북·제3국 거쳐 목숨 건 남한행…이혼·신용불량 ‘좌절’도 장씨, 두번 탈북·제3국 거쳐 목숨 건 남한행…이혼·신용불량 ‘좌절’도
오흥섭(52)씨와 장유빈(41)씨는 충남 청양에서 소문난 잉꼬커플이다. 2013년 부부의 연을 맺은 두사람은 지난해 11월29일 정식으로 식을 올렸다. 온화한 남편과 똑부러지는 성격의 아내는 각각 주점과 식당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남남북녀 커플이기 때문이다. 슬하에는 장씨가 낳은 대학생인 딸과 초등학생 아들 남매가 있다.
남과 북은 여전히 분단된 채 대치 상태지만 이들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통일’을 이룬 것이다. 남과 북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가족내력, 정치적·언어적 환경,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모두 너무나 다르지만 그 한계를 사랑과 이해로 슬기롭게 극복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들 가정에서만큼은 이미 행복한 통일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남남(南男)’ 오씨는 1남6녀 대가족에서 자란 장손이고 ‘북녀(北女)’ 장씨는 북한에서 2남1녀 중 외동딸로 귀염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시절 장씨의 집안은 비교적 유복했다. 어머니는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요리솜씨가 뛰어나 동네 잔치가 있을 때면 발벗고 나서 음식을 해줬고 요리로 돈을 벌기도 했다. 아버지는 탄광에서 간부직을 수행하면서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목수 역할을 자처했다. 장씨는 어머니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의 요리를 도우면서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장씨, 두번의 탈북 끝에 2009년 입국
장씨는 1994년 20세의 나이로 시집을 갔다. 생활을 위해 음식을 해서 내다팔기도 하면서 귀여운 딸도 하나 낳았다. 그러나 남편의 폭력은 견디기 어려웠다. 장씨는 "북한에선 남자 중 80%가 폭력을 한다. 어느정도로 심하냐 하는 것이지 다 폭력을 한다. 결국 브로커를 통해 2000년에 중국으로 나왔다"고 했다.
딸이 눈에 밟혔지만 장씨는 혈혈단신으로 중국행을 택했다. 한번뿐인 인생을 이대로 낭비할 순 없었다. 중국의 어느 대도시에 정착한 장씨는 본격적으로 요리에 뛰어들었다. 중국 음식점에 취직한 장씨는 숙식을 그곳에서 해결하며 중국요리를 배웠다.
쾌속승진해 주방장까지 오른 장씨는 ‘창창한 앞날’을 기대했지만 주변사람의 밀고로 2004년 북한으로 끌려갔다. 국가보위부에서 1주일정도 고초를 겪은 장씨는 풀려났다. 부모가 힘을 써 장씨의 수용소행을 막은 것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 2개월쯤 지나자 어머니는 장씨에게 "여기는 비전이 없으니 다시 가라"고 했다. 그렇게 장씨는 가족을 두고 다시 한번 두만강을 건넜다.
무사히 중국으로 돌아온 장씨는 음식점에서 함께 일하던 조선족 요리사와 결혼을 했고 아들도 낳았다. 그러던 2009년 장씨와 장씨의 조선족 남편, 아들, 남편의 가족은 ‘한국행’이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길을 택한 것이었다. 중국 남서부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장씨 일행은 국경을 넘어 동남아국가로 이동했다. 이들은 밤에만 이동하는 강행군을 하면서 산을 8개나 넘었다. 장씨는 한때 혈압이 올라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씨 일행은 한국대사관에 도착했고 2009년 5월5월 어린이날 마침내 한국땅을 밟았다. 3개월간의 하나원 생활 과정 속에서 장씨는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수료할 때는 상장도 받았다.
장씨의 요리솜씨는 하나원에서도 빛을 발했다. 한국예술전문학교에서 나온 강사들은 장씨의 솜씨를 알아봤고 그때의 인연으로 장씨는 한국예술전문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해 2년간 공부를 했다. 의정부에서 지내면서 경기 남부인 군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교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하는 고역 속에서도 요리 공부는 재밌기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장씨는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10년 10월 대한제과협회 경기도지회 주최 2010 경기제과제빵 경진대회 케이크 부문 금상, 2011년 11월 세계음식문화연구원·한국푸드코디네이터협회 주최 제8회 대한민국 향토 식문화대전 요리 경연대회 은상, 2012년 10월 전주비빔밥축제 전국요리경연대회 동상 등 입상 경력은 쌓여갔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서 2년동안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애란 원장의 제안으로 대학에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이 와중에 북한에 있던 딸이 탈북에 성공해 남한으로 와 기쁨은 한층 더 커졌다.
◇고향친구에 사기당한 뒤 찾은 청양서 새 삶
그러나 하늘은 장씨에게 행복한 삶만을 허락하진 않았다. 북한 고향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2800만원 정도 빚을 지게 됐고 그 이후 집을 압류당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중국에서 함께 온 조선족 남편과는 이혼했다. 의정부에 차린 순댓국집은 뜻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장씨는 "사기 당했을 때 주위사람들이 자기네 같으면 자살했을 거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운수땜(액땜)했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결국 장씨는 2013년 애증이 교차했던 의정부를 떠났다.
충남 청양에 있던 아는 언니를 찾아나선 장씨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 오씨를 만났다. 당시 50세였던 오씨는 면사무소 공무원으로 일하다 1987년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사람이었다. 한차례 이혼을 경험한데다가 나이도 11살이나 많고 장애까지 있었지만 장씨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씨가 장손이라 명절 때면 최소한 30명이 모이는데도 장씨는 그런 오씨에게 왠지 마음이 갔다. 장씨는 "나를 보더니 한눈에 반했다고 하더라. 내가 눈이 커서 그런지 눈 작은 사람을 부러워했다"고 수줍게 말했다. 특히 자신이 북한과 중국에서 낳아 데려온 두 아이에게도 제 자식처럼 대해주는 모습에 장씨는 마음을 열었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장씨에게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청양에서 문을 연 식당은 점심 때만 50~60명이 찾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10월부터는 장씨가 강사로 나서는 방송사·백화점 주최 북한음식 강좌가 정규 강좌로 편성된다.
요리 국가대표를 뽑는 예선 경기에선 북한음식 ‘두부밥’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고 그 결과 다음달에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유럽에서 열리는 한식요리 대회에 딸과 함께 출전하게 됐다. 이달말에는 장씨 이름을 내건 통일음식문화연구원도 열 예정이다.
◇결혼생활은 행복 그 자체…탈북자들 위한 의미있는 조언도
말 그대로 우여곡절의 삶을 겪어온 장씨에게 지금의 결혼생활은 행복 그 자체다. 서로 정서적 문화적 차이가 많이 나지만 큰 갈등은 없다.
부부간의 나이 차이 탓도 있지만 서로가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성향의 오씨가 부탁하거나 요청하면 남편은 대부분 들어주고 있단다.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통일이 된 이후 남과 북이 첨예하고 복잡한 각종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 되고 있다.
장씨는 탈북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싶어 했다.
장씨는 "탈북자도 자기 끼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북한 여자들이 오면 다방이나 노래방으로 간다. 목숨 걸고 왔는데 그런 데 가서 하녀 취급을 당하니 마음이 아프고 기분이 안 좋다. 절대 그런 길을 가지 말고 배워야한다. 어떻게든 배워야만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수준급은 못돼도 일반사람에 속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씨는 "남의 땅에 와서 사니까 일단 숙이고 살아야한다.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압도할 노력을 해야 한다. 저쪽에서 주방장이었지만 이쪽에선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북한사람들이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한 사람들이 통일이 되면 다 공짜인줄 아는데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이같은 생각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장씨는 "북한 사람들을 공짜에 물들게 하면 안된다. 땀을 흘려야지. 통일이 돼도 일하는 자만 먹고 살게 해야한다. 일을 안하는 사람(탈북자들)이 있다. 생계비를 받으니 사회 적응을 무서워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씨는 그러면서 "내 딸도 이번 학기 성적이 안 나와서 학비 300여만원이 나왔다. 그래서 학비를 대주고 딸에게 갚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한테도 다 받는다. 그래야 아이들도 개념이 생긴다"며 " 거기(북한) 살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편하냐고 한다. 용돈도 안주고 다 알아서 하라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안한다"고 전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