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장 큰 타격은 - 관광·샤핑업계 ‘비상’… 명품업체 주가 급락
▶ ■ 반사이익 얻는 분야 - 수입품 가격하락 혜택… LA항 물동량 늘듯
[위안화 평가절하… 미국 경제 파급효과는]
LA의 유명 샤핑몰인 ‘베벌리센터’는 늘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대형 관광버스로 베벌리센터에 도착한 이들은 구찌 핸드백, 나이키 스니커 등을 구입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베벌리센터 앞에 중국인 샤핑객들을 풀어놓는 관광버스는 월 평균 70대 가량. 버스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은 주머니 두둑한 요커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구매력에 다소 문제가 생겼다. 중국 정부가 지난 11일 자국 수출 부양을 위해 위안화를 사상최대치로 평가절하한데 따른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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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위안화의 기준 환율을 달러 당 6.2298위안으로 제시해 전날 6.1162위안보다 1.86% 높게 고시했다. 인민은행이 고시한 위안화 절하 폭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위안화 가치하락에도 불구하고 요커들의 씀씀이는 아직 꺾이지 않았으나 남가주의 비즈니스 관계자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위안화의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경우 요커들과 중국의 부동산 구매자, 투자자들이 미국시장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가치하락은 중국인들의 지출감소와 투자위축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이들의 ‘큰 손’이 오므라들 수 있다는 얘기다.
베벌리센터의 마케팅 디렉터인 수잔 밴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확실하게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중국인들이 샤핑을 어지간히 즐긴다는 점”이라며 “요커들은 우리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했다.
런민비로 알려진 위안화의 가치를 끌어내리기로 한 중국의 결정은 남가주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그 영향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요커들이 떨어뜨리는 달러, 투자와 교역 등을 통해 남가주 비즈니스들은 중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위안화의 약화는 남가주 경제 전반에 신속하고도 대대적인 임팩트(impact)를 가져오게 된다.
위안화 가치하락에 대한 반응으로 요커들이 씀씀이를 줄이면 당장 소매업체들과 샤핑센터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투어 가이드와 호텔들 역시 찬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상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위안화 가치절하로 인한 제품가격 하락으로 반사이익을 취하게 된다.
해외투자 유치업체들도 안전자산인 달러에 재산을 묻어두려는 중국인들이 줄을 선 상태이니 당분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칼스테이트 채널 아일랜드의 경제학자인 손성원씨는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위안화 절하는 업주들에게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의 교역에서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남가주 경제는 위안화 가치하락으로 일시적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의 환율 조정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남가주 비즈니스로는 관광업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관광버스를 타고 남가주 곳곳을 누비며 떼를 지어 샤핑몰과 식당으로 몰려다니는 요커들 덕분에 지역 경제는 중국 발 달러화를 적잖이 긁어모을 수 있었다.
관광청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미국을 방문한 중국인의 수는 총 220만명 정도로 전년도에 비해 21%가 늘어났다. 이들이 미국에 뿌리고 간 돈은 240억달러. 2013년의 수치에 비해 12.6%가 증가한 액수다.
지난해 11월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인 관광객과 출장 여행자들의 비자규정을 완화함으로써 미국 관광업계에 큼직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천사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로스앤젤레스는 뉴욕에 이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방문지다. 2014년 LA를 찾은 중국인들은 샤핑과 숙박비 등으로 총 11억달러를 지출했다.
손성원씨는 “남가주에서 가장 많은 관광비를 사용하는 여행자들이 바로 요커들”이라며 “위안화 평가절하가 지속되면 이들의 관광경비는 더욱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몬트레이팍에 위치한 관광버스회사 ‘아메리카 아시아 트래블 센터’의 매니저 마이클 우는 “위안화 평가절하의 영향으로 영업이 다소 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지출비용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매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관광산업이 ‘시차’라는 일시적 보호막을 둔 것과 달리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일부 소매 브랜드는 위안화 절하로 즉각적인 ‘공습’을 당했다.
요커들의 씀씀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로 뉴욕증시에 상장된 이들 브랜드의 주가가 급락했다.
경기둔화, 환율조정과 시진핑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부패척결 사정작업이라는 3대 악재로 요커들의 큰 손이 오그라들고 지갑이 닫힐 것이라는 우려 속에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브랜드인 코치의 주식은 다른 럭서리 소매업체들의 주식과 함께 중국 정부의 위안화 평가절하 발표 직후 4% 넘게 떨어졌다.
메이시스의 2분기 순익 역시 26%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LA와 뉴욕을 찾은 중국인들이 지출을 줄인 것이 메이시스 분기 순익에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들은 위안화 평가절하가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소매업계 전문가들 역시 미국 여행에 나선 중국 샤핑객들이 앞으로도 명품 구입에 열을 올릴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았다.
미국산 사치품에 대한 높은 수입관세로 인해 같은 제품을 중국에서 구입할 경우 20~30%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에 걸쳐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한 탓에 미국을 방문한 투자자들과 관광객들은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LA 인근의 ‘시타델 아웃릿’을 찾은 광조우의 유치원 원장 홍양은 “미국에서 유명 브랜드를 구입하면 고향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훨씬 싸다”며 “늘 미국에서 샤핑을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두 아들이 서머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년 미국을 방문한다는 그녀는 “위안화 평가절하에 관계없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네임을 구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가주 소매업자들의 입장에선 위안화 평가절하의 후유증을 피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명 샤핑몰들이 관광객 유치에 한층 더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베벌리센터는 웨이보와 웨쳇 등 중국의 인기 있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프로파일(profile)을 런칭하고 올해 초 중국계 농구스타인 제레미 린을 초청해 춘절맞이 행사를 주관했다. 춘절은 중국의 설에 해당하는 명절이다.
관광업 외에도 캘리포니아에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인해 희비가 갈린 승자와 패자가 공존한다.
런민비 가치절하로 인한 중국산 수입품의 가격하락은 미국에서 가장 바쁜 항만인 LA와 롱비치의 물동량 증가로 연결된다. LA와 롱비치는 수출품보다 수입품을 훨씬 많이 처리하는 항구이기 때문이다.
국제교역 전문가인 조크 오코넬은 LA와 롱비치의 물동량이 대폭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늘어난 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부두 노역자, 트럭 기사와 창고 인부 등 운송업체의 인력이 보강될 것으로 점쳤다.
물론 수출업자들은 어느 정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오코넬은 “수출업 종사자들에게 위안화 가치절하는 그들 앞에 장애물이 추가로 설치됐음을 의미한다”며 “마치 양쪽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화 하락은 LA 일대의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중국인 큰 손들의 투자확대를 촉발할 수 있다.
LA 경제 동향을 추적하는 UCLA 앤더슨 코캐스트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리엄 유는 많은 중국인들은 그들의 돈을 달러화에 묻어두는 것이 가치보전에 유리하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중국인들은 이미 남가주 부동산 시장의 ‘큰 손’ 투자자들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들 중 다수는 대형 호텔의 오너와 LA 다운타운과 베벌리힐스의 대규모 콘도미니엄, 호텔, 주상복합단지 등의 개발업자로 변신했다.
샌개브리얼 밸리의 주거용 부동산 브로커인 탐 버지는 “중국인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이 지역의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 곳을 그들의 돈을 묻어두기에 안전한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로 이런 점들을 근거로 버지는 중국의 환율 조정으로 인한 약간의 구매력 감소에도 불구하고 남가주 경제에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녀들이 미국에서 교육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미끄럼질을 치면 남가주 비즈니스들은 더 이상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단기부양 효과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밀접한 교역관계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경제가 문제에 직면하면 다른 쪽도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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