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얘기다. 7년 동안 결혼생활 끝에 남매를 두었으나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는 이혼을 한 게 12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개개인의 사연이야 어떻든 간에 보편적으로 이혼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구조에서 행여나 어린 남매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봐 조기유학을 보냈고 태평양을 넘나들면서 눈물 반 한숨 반으로 돌봐온 결과 이제 그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그동안의 가슴 아팠던 사연들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들의 사춘기는 이역만리 낯선 하숙집에서 한국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삭혀야만 했다.
그동안 미국에 살았지만 자식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지금이다. 이미 끝난 12년 전의 결혼생활인데 어느날 갑자기 행색이 남루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치 빚 받으러 온 채권자 마냥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방 한칸을 차지하고 땅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어가며 사사건건 식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며 심지어는 오래 전 남이 된 옛 아내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속한 말을 하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해되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과 언행에 아이들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가고 가족이 외면하는 생활에서 소외감을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는 극도로 쇠약해질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슬픈 일이다. 인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그 사람 뿐이겠는가. 진취적이지 못한 고루한 사고를 지닌 채 대접받기만을 원하는 아버지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시대에 맞춰 생각도 바뀌어져야 한다. 시대를 역행한다는 건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양반이 부엌에 들어가면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에 떠다 받쳐주는 사람 없으면 사랑방에서 굶고 앉아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는가.
아직도 생각에 문제가 있는 아들, 남편들이 있다고 본다. 그들은 의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행동도 옳지 못하다. 자식들은 미국 속에서 트인 교육을 받고 있는데 가정에서 늘 아버지의 권위를 강요하고 뒤에서 어머니는 늘 쩔쩔매는 위치이면 곤란하다.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가사일에 즐거움을 느낄 줄 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이겠는가.
부모는 자식의 롤 모델이다. 책 읽는 모습을 늘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히 독서를 즐긴다. 강요할 필요가 없다. 무슨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보면서 배우는데.
딸과 아들이 있는 우리 집은 어린 아들에게 가사일을 더 강요한다. 더럽고 힘든 일은 남자가 하는 게 좋다고 가르친다. 공평치 못하다고 때론 저항하고 어려서 하는 모양새가 어설프지만 중단하지 않는다. 먼 훗날 그의 가족에게 존경받는 멋진 아버지가 되어야 훌륭한 사회 구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인류사회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선 아들에게 더 비중있는 인간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을 둔 부모의,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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