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배, 한인사회의 ‘품격’과 ‘미래’
구한말의 증인들
바이든과 ‘유령총’
2019년 베스트 10
투키디데스 함정과 수정주의세력 함정
인류 역사를 바꾼 신병기들
행복을 만들어내는 투자
‘송무백열’(松茂柏悅)
2007년 6월 7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하버드대를 중퇴한 지 32년 만에 모교 졸업식의 초청 연사로 초대됐다. “인터넷의 힘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세상의 장벽을 돌파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정보기술(IT)의 역할을 역설한 그의 연설은 큰 호평을 받았다.■미국에서는 대학 졸업 시즌인 5~6월이 되면 각 대학의 초청 연사 명단과 그들의 연설 내용이 화제에 오른다. 164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9명의 하버드대 졸업생 앞에서 축사를 한 이래 수많은 정치인과 법률가·작가·기업인·연예인 등이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과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던져 왔다. 1947년 조지 마셜 미 국무장관은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 재건 계획인 ‘마셜 플랜’을 공개하기도 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삼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 하다가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우리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분발하여학문을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 안중근 의사 중에서 -안중근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여순 감옥에서 남긴 마지막 어록입니다.‘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풍찬노숙의 삶 속에조국과 민족을 향한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해외 이민 1세들의 삶 또한 어쩌면 또 다른 ‘풍찬노숙’이었습니다.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했고,생존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했습니다.그래서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이 메시지는 단순한 역사적 유언이 아니라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에게 주는 살아있는 당부입니다.우리는 뿌리를 잊지 않는 정체성을 지키고,성공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배우는 아니었다. 외모도 역할도 여느 배우와 달랐다. 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당찬 여성 역할을 했다. 영화 ‘화니 걸’(1968)과 ‘추억’(1973)이 대표적이다. 가수로 인기가 높기도 했다. 영화제작과 연출까지 겸하며 60년 넘게 활동했다. 아카데미상과 그래미상, 에미상, 토니상을 모두 받았다. 개인으로선 극히 드문 기록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84)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이 적절한 인물이다.■제79회 칸국제영화제는 지난 23일 오후(현지시간) 폐막식에서 스트라이샌드에게 명예황금종려상을 시상했다. 프랑스 유명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8분가량 수상자의 업적을 소개했다. 스트라이샌드의 활약이 담긴 영상이 2분 넘게 이어졌다. 이후 스트라이샌드가 영상으로 4분 넘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명예황금종려상 시상에 약 15분이 소요됐다. 이날 폐막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수상자에 대한 존중이 충만했던 순간이었다.■지난 17일에는 박찬욱 감독이 코망되르훈장
알람이 울린다. 큰 사이렌 소리에 이어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주민 여러분, 화재 경보입니다! 비상계단을 이용해 대피해 주십시오.”한국을 한 달 동안 방문하며 숙소를 정하는데 여러 상황을 고려했다. 우선순위가 남편이 투석 받기에 편리한 곳이어야 했다. 예약한 신장내과 투석센터와 같은 건물 위층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투석센터는 2층, 숙소는 8층이었다. 추운 날씨이지만 엘리베이터만 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내려가니 간소하고 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어 좋았다.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믿고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내 골목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줄어들고 저녁 공기는 조용하게 흘렀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틈을 비집고 요란한 소리가 들어오며 평온을 깨뜨렸다. 화재 경보음이었다. 이어서 울려 퍼진 대피 방송은 상황을 단숨에 아수라장으로 바꾸어 놓았다.머릿속이 하얘졌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몇 해 전, 보슬비 내리던 초여름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현충사를 찾았다. 기와지붕 위로 빗방울이 미끄러지고, 늙은 소나무들은 빗물을 머금은 채 고요히 서 있었다.젖은 돌계단을 따라 걷다 보니, 전쟁의 기억과 백성들의 눈물, 그리고 한 사람을 끝내 잊지 않으려 했던 마음들이 빗속에 스며 있는 듯했다.충남 아산의 현충사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하나는 숙종의 친필 한자 현판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현판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글씨가 한 사당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울림을 주었다.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서거 약 백 년 뒤인 1706년 세워졌다. 아산 유생들의 상소를 숙종이 허락했고, 이듬해 숙종은 ‘충성을 드러낸다’는 뜻의 ‘현충(顯忠)’이라는 이름과 친필 현판을 내렸다. 이는 조선이 이순신을 국가의 정신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하지만 현충사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은 문을 닫았다. 다행히
가든그로브의 화학물질 저장탱크 시설에서 발생했던 폭발 위기 사태가 일단은 진정됐다. 한인 등 5만여 명의 대피 주민들이 집으…
미주 한인사회 최고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백상배 미주오픈 골프대회’가 올해로 46회째를 맞이했다. 오는 6월4일 캘리포니…
경찰 아저씨, 이 사람이에요! 바로 이 사람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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