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댓글 2000-09-1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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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병렬(교육가)

조건이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일을 자기 뜻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내어 놓는 요구나 견해이다. 그 분은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조건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만일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일 때는 거부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느 부모님 한 분이 전화로 학교에 기부를 하고 싶은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받는 쪽에서도 조건을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차 들어보기로 하였다.

“그것은 이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특혜를 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받기 원합니다.”
그 분은 분명하게 꼭 지켜야 할 조건을 제시하였다. 의외였다. 그 쪽에서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을 궁금하게 생각하던 중 뜻밖의 요청이었다. 그 분은 수표에 이름이 있으니까 내 자신이 직접 입금하기를 바라서 그대로 하였지만, 재무이사한테 기부자의 성함을 밝히지 않고 사연의 전말을 보고하였다.
“그 분은 100명이 할 일을 혼자 하셨습니다. 그 금액은 100명이 100불씩 거출한 큰 금액입니다.”

이런 재무 이사의 해석을 듣고 보면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오래 학교 경영을 하다 보니 이와 비슷한 경우를 몇 차례 겪었다. 어떤 분은 결혼 20주년 기념 행사 비용을 고스란히 기부하였고, 한 번도 뵌 일이 없는 어떤 분은 편지로 큰 수표를 보내왔고, 어떤 졸업생은 첫 월급의 일부를 희사하였다. 이런 분들의 정성으로 특수 학교가 3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다. 한인들이 기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학부모가 학교에 기부하거나, 담임 교사에게 작은 선물을 할 때는 다 앞에 예로 든 정신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만일 자녀에게 베풀어질 특혜를 생각한다면 자녀를 위해 불행한 일일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특혜를 받는다면 이것은 교육의 바람직한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만일 특혜를 받는 학생이 있다면 그는 사회를 바르게 볼 수 없으며, 어떤 그릇된 이미지로 사회 양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기능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장소이다.

세계의 왕족이나 부호들도 자녀를 집에서 개인 교수한테 교육시키지 않고 일반 학교에서 교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렸을 때 특혜를 받게 되면 인성이 여리게 되거나 필요없는 교만만 부풀게 할 염려가 있고 사회성을 발전시키기 힘들다.

요즈음은 가정에 엄한 부모가 거의 없고, 학교에서도 엄격한 훈육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결코 자유 방임 주의가 될 수 없다. 엄연한 사회 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어떤 특혜를 바라는 학부모가 없어야 하고, 특혜를 주는 학교나 교사가 없어야 교육 현장의 공기가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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