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플러싱 종점에서 전철을 타고 회사로 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한인화가 강익중의 대형벽화가 마중 하고 그 하단에 7번 전철 입구가 있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밑에서 올려보아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까마득할 정도로 높다. 그런데 아침 출근길마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뛰고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가는 속도가 늦다보니 다들 추월할 수 있는 왼쪽으로 가서 뛰다시피 걸어 내려가 재빨리 전철을 타러 간다.
7번은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라고 불릴 정도로 워낙 동양인이 많긴 하지만 동양인뿐 아니라 백인, 히스패닉, 흑인도 모두 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달려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 오른쪽 라인에 서서 왼쪽으로 추월해 뛰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내려가는 여유를 만끽한다.
어차피 하루종일 바쁠 터인데 아침 꼭두새벽부터 뛰고싶지 않다. 에스컬레이터가 1분만 가만히 있으면 밑으로 데려다 주는데 쓸데없이 힘을 쓰고 싶지 않다. 서둘러야 불과 몇십 초 빨리 가는 것이다.
‘저 사람의 하루 삶은 어떨까? 저렇게 허겁지겁 뛰어서 처리할 일은 무엇일까? 평생 헉헉 대고 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한다.
물론 그 시간동안 사고의 맥이 끊겨서도 아니고 별로 대단히 사색하는 것도 없다. 그냥 그러고 싶을 뿐이다. 불과 1분 갖고 호사를 부리는 나는 가끔 우리들은 너무 빨리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칼릴 지브란의 「영혼의 잠언」에 “이집트인의 특성은 신비로움이다. 칼데아인의 특성은 셈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인의 특성은 균형이다. 로마인은 모방에 있다. 중국인은 예절이다. 힌두인은 선악을 가늠하는 것이다. 아랍인은 옛날 얘기와 과장이다. 유대인은 종말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영국인은 분석력과 판단력이다. 스페인인은 열정이다. 독일인은 야망이다. 러시아인은 슬픔이다.”는 구절이 있다.
한국인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재미한인의 특성은 성공이다” 혹은 “출세이다”고 표현코자 한다.
대다수 한인들이 한시바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빨리, 빨리!”를 외치고 있다.
어느새 새 천년의 가을 속에 있다. 흐르는 화살 같은 세월 속에 쉼표를 찍어가며 살아보자. 생활에 찌들렸다고 궁상스런 마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마음만이라도 누구보다 호사를 부리며 사는 것이다.
내 생애 한 번 뿐인 지금 ‘이 나이, 이 가을’을 찡그리고 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바쁘면 바쁜 거고, 힘들면 힘든 거고, 가난하면 가난한 거지. 그걸로 기분 상해하면 그것이 더 억울한 것이다. 내가 만드는 한평생을 졸작품으로 남겨놓을 수는 없다.
얼굴에 잔뜩 주름을 달고 감정이 삭막하게 메마른 다음 돈을 움켜쥐어 보았자이다. 은행 체크가 바운스 나면 “그래봤자, 한달 벌과금이 백불 넘겠냐” 하는 여유로, 매사를 통(?) 크게 받아들이자.
아침에 일어나 유리창을 열면 가득 들어오는 싱그러운 대기가, 길을 가다 발견한 보도 블럭 틈새 풀 한 포기가, 늦은 밤 베란다로 나가니 어느 집의 오렌지 빛 등불이, 그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 배경으로 멋들어지지 않은가.
내가 주인공인 한평생을 성공과 출세라는, 허명과 재물에 사로 잡혀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쩍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정말 소중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빨리 성공하고 싶고, 빨리 자리잡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 일과를 돌아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