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고통을 동반한다. 마찬가지로 ‘창작과 예술’도 그러하고 ‘종교와 철학’ 또한 그러하다.
生의 뼈저린 아픔을 경험하지 못하면 ‘진정한 환희’도 경험하기 어렵다.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보면서 저렇게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잘 하려면 얼마 만큼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과 싸워야 했을까? 그리고 코치는 얼마나 애타게 제자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때로는 실망스러운 결과에 안타까워 해야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뿐이랴, 대통령도, 선생님도, 종교적 지도자도, 부모님들도 얼마 만큼이나 애타게 지켜봐야 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을까.
또 농부는 어떠한가. 벼를 심어 놓고 행여 물이 모자랄새라, 비가 안 와서 논이 갈라져도 걱정, 비가 너무 와도 걱정,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김을 매야 하고, 잡초를 제거해야 하고, 또 병충해가 예견되면 화학약품을 뿌려주어야 한다.
일년을 하루같이 자라나는 ‘벼’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다가도 느닷없이 태풍이라도 부는 날이면 밤잠을 꼬박 새운다.
동이 트자 마자 논에 달려가 쓰러진 ‘벼’를 바로 세우고, 아이를 키우듯, 달래고 빌어야 한다.
가을이 오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황금 들판에 잔잔히 이는 황금 물결을 보면서 지난 여름 동안 고생한 고통은 일순간 기쁨으로 변하고 수확의 즐거움에 지칠 줄 모른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님의 심정이 어찌 농부의 마음과 다르랴!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린대로 할 일과 걱정이 있었듯이 대학을 가고 직장을 얻어 일을 잘 한다 해도 걱정은 여전하다. 열 두시가 넘으면 혹여 차 사고라도 나지 않았는지, 혹 강도에게 다치지나 않았는지... 한 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얘야! 저녁은 먹었느냐?” 하는 어머님의 걱정스러운 말씀에 아들은 “먹었어요” 그저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늦게나마 들어와 준 아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3년 전에 내자를 잃은 상태에서 딸 셋은 차례로 학교 때문에 나가서 살고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자기가 좋아서 다니기는 하지만)회사에 다니는데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 5시30분에 기차를 타고 맨하탄으로 일하러 간다. 그리고 저녁 10시쯤 집으로 온다. 어떨 때는 자정이 넘어서 올 때도 있다. 말은 안 해도, 부모로서 지켜보는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어버이의 마음이 이럴진대 올림픽 경기에 출전시킨 부모님과 코치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금메달이라도 따는 날에는 얼마나 기쁠까. 혹 메달을 건지지 못하면 또 장장 4년을 기다려야 하는 선수, 부모님과 코치들의 아픔과 허탈한 감정을 무엇으로 달랠까?
하기야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법,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겠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올림픽 경기중 금메달을 딴 분들은 물론 특히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선수와 코치, 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를 드리고 싶다. 올림픽이 상업화 되기 전, 본래의 정신은 최선을 다하는 데 있지 반드시 상을 타야 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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