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란서 사람들은 미국사람을 무시한다. 오랜 역사배경 속에서 형성된 부정적 시각이다. 그러나 그 중 한 가지는 책을 멀리하는 비문화적인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 안주한 미국사람들의 값싼 인격에 대한 비판이다.
그 미국사람들이 이제는 동양인을 비꼬는 일화가 있다. 오랫동안 주일대사를 지났던 라이샤워는 다음과 같이 일본사람을 인상 지운다.
[내가 만난 일본 지도자들에게 취미를 묻게 되면 한결같이 골프와 독서이고, 그들과의 대화는 날씨와 골프였다]
골프는 취미라지만 책을 취미로 읽는다는 그의 비아냥이었다. 동서 문화적 사고의 다름이라 치부하면서도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언젠가 선진국이라 말하는 미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독서량을 무작위로 조사한 통계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이 1년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일본인은 17권을, 그리고 미국인은 43권을 읽는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들 모두가 독서삼매를 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 단 15분의 습관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서울 장안 서점가에 돌아다니는 말이라지만 웬지 모를 자존심이 상한다.
요즘 몇 개 안되는 뉴욕한인 서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책장사 끝]이라는 탄성이다. 가벼운 소설이나 잡지가 고작, 일반서적은 매기가 없다는 것이다.
뉴욕한국문화원은 규모있는 한국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그 비싼 공간에 마련한 깨끗하고 아담한 도서실이 독서 분위기를 더해 준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는 한인은 극소수라 전한다. 한인 밀집지역인 퀸즈에도 한국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시립 도서관이 4곳에 이른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이곳도 그 대다수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었다.
그 뿐이랴. 한인단체 200여, 500여의 종교단체, 이들 중 도서나 역사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곳은 언론사를 빼놓으면 손꼽을 정도.
이것이 40만이 몰려 산다는, 그리고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다는 뉴욕한인들의 현주소다. 우리는 책을 멀리하고 사는 민족이라는 증거다.
본격적인 가을이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말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하기도 하고 교양의 건축사라 말한다. 책을 읽는 마음의 여유, 그 정서, 귀가 닳도록 들어온 이 상식을 오늘 우리는 외면하며 산다.
책 읽는데 계절이 따로 있으랴. 오죽했으면 [이 때만이라도]라 했으랴. 독서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상시적인 것, 습관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돈벌이에 골이 지근거릴 때, 남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때, 손님이 없어 한숨지을 때, 때로 따분할 때, 잠 못 이루고 엎치락 뒤치락 할 때 그리고 책만 보면 잠이 온다는 그런 사람에게 책 한 장의 글, 그것이 벅차면 그 반쪽 만이라도 그것도 벅찬 일이라면 마음에 있는 한 권의 책을 가슴에 안고 잠드는 생활의 반복이 있음직하지 않은가.
독서란 타인의 세계에 머물러 보는 시간이라 했다. 우리에게 인색한 남의 세계를 체험해 보려는 이 작은 노력 또한 소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가을 만이라도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