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두 아들의 풋볼게임에 가는 일로 가을은 급속으로 지나간다. 토요일, 일요일로 각각 나누어진 스케줄은 문제가 있지만 같은 날로 잡힐 때는 정말 몸살을 피할 수가 없다. 그 뿐인가, 운동하는 아이들의 부모들 모임까지를 더하면 참으로 빡빡하다.
그러나 경기장에 가면 그런저런 생각이 사라진다. 우선 이곳의 미국부모들의 열띤 응원과 신나게 즐기는 분위기 속으로 나도 빠져 들어간다. 어느 게임에서나 한국아이는 우리 애들 뿐이니 자연히 한국여자는 나 혼자일 수 밖에...
처음, 나는 그 복잡한 풋볼경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열심히 공부(?)를 햇어도 마찬가지... 나중에는 포기하고 그저 내 아들이 뛰는 그곳에 엄마가 함께 서 있어 주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위로를 삼았다.
어느 운동경기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승패가 나뉘어야 하는 필연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는 것 같다. 더욱이 인생은 어차피 경쟁과 승복의 반복을 해가면서 도전하고 용납하는 힘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시합에서 졌을 때, 아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른다. 그 손에 묻었던 진흙으로 칠해진 얼굴이 정말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지 못해 웃었다가 아이와 또 다른 싸움경기(?)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언젠가 경기 도중에 모든 선수들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세워 꿇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덩달아 숨을 죽이고 있노라니 선수 하나가 엎드려 못 일어난 채 코치들이 달려나가고 있었다. 경기 주치의가 도착하고 선수가 경기장 밖으로 옮겨질 때까지 그들은 무릎을 굻고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로 가끔 보는 모습은, 누구 편의 선수이든지 넘어져 다쳤을 때에는 또 그렇게 무릎을 꿇고 일어나서 걷기를 기다려 준다. 이윽고 그 선수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절룩거리며 다시 걸을 때, 모두는 손뼉을 쳐서 환호하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정말 순수하고 정정당당한 운동정신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부딪쳐 넘어뜨려야 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Score Count가 끝난 다음에는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것도 보기 좋았다.
이 경기처럼 이들이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훈훈하고 정당한 분위기로 편안할 수 있겠다. 승부를 겨루되, 서로를 존중하고 각 개인을 아끼고 다른 이의 실패를 야유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넘어져 부상당한 한 사람이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래며 기다리고 바라보아 주는 사람들로 산다면...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누군가 이 인생의 진짜 경기장에서 넘어졌을 때... 우리는 무릎 꿇는 심정으로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 걷기를 기다려 주는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없이 바라보아 주는가? 그 누구라도 그렇게 넘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는가? 그렇게 넘어진 상처에서 흐르는 붉은 핏물이 먼 훗날 흉터로 남겠지만 그런 연습과 실패 없이 인생은 살아나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해 보는가?
실패는 ‘경험’이라는 다른 표현임을 주시하자. 그 누군가 넘어졌을 때 무릎을 꿇고 바라보아 주고, 삶의 한 골을 넣었을 때 아낌없이 손뼉을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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