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같이 불편하고 뻑뻑하며 자꾸 땡기는 것같아 안과에 갔더니 ‘안구건조증’이라고 한다.
오래 전 한국 영화의 여주인공이 약국에 가서 통증을 호소하자 “안구건조증이군요”하는 약사의 무심한 한마디 말이 참으로 새롭게 들렸는데, 눈물이 모자란다는 그 안구건조증이라니.
나이가 들면서, 여성일수록, 컴퓨터 장시간 사용자, 이 세가지 해당사항에 속한 내게 의사는, 별로 심하진 않지만 눈물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눈이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인공 눈물을 보충해 주라고 한다.
그래서 방부제가 들지 않은 인체에 무해한 인공 눈물 한방울을 눈에 떨구었더니 건조한 눈이 금새 괜찮아지고 사물이 더욱 똑똑히 보이는 것같다.
그래도 ‘만들어진’, ‘가짜’인 눈물이 싫어 억지로 슬픈 일을 생각하고 눈물 한방울을 흘려볼까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감정은 맹숭맹숭하니 힘주는 눈만 아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별로 울어본 적이 없는 것같다.
물론 지난 가을, 본국민은 물론 뉴욕의 한인들은 남북 이산가족들이 푸른 청춘에 헤어져 주름진 노년에 꿈결처럼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것을 보며 함께 울었다.
그 눈물은 50년 못난 역사에 대한 분노와 허망의, 가슴 아픈 눈물이었다.
또한 드라마 “가을 동화” 비디오를 보고 한인들은 다음날 아침 눈이 퉁퉁 부어 일하러 나가기도 했고 허구의 내용을 보고 눈물을 흘리다 자신의 이민 설움이 복받쳐 통곡했다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들은 울어도 시원치 않은, 해결된 것이 없는 눈물이다.
연말이면 한 해를 마감하는 통과의식처럼 불우이웃을 돕자, 소외된 자들의 처지를 돌아보자고 다들 외친다. 작은 힘을 모아 이웃을 돕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기사가, 미담이 실려도 정작 대다수 한인들은 무감동, 무감각하여 별 반응이 없는 것같다.아무리 도와도 가난한 사람은 항상 있으니까, 고작 몇 끼니 해결된 것뿐일테니, 매사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연말 한인사회에도 ‘인공 눈물’이 필요한 것같다.
두 단체에서 서로 행사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싸우고, 같은 동포끼리 네일가게, 신발가게가 바로 옆에, 앞에 생겨 과당경쟁을 불러일으키고, 돈 좀 있다고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모이기만 하면 남 흉보고 돈내기 게임을 하는 등 우리들의 가슴에서 사막의 모래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이민생활을 열심히, 치열하게, 필사적으로 산다는 것만으로 용서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야속할 때, 배신감을 느낄 때, 내맘 같지 않을 때면 슬픔을, 눈물을 떠올리자. 위세당당한 상대방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성내게 한 자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 아옹다옹 평생 살아야 하는 사람의 삶 자체가 불쌍하게 여겨져 지금까지의 분노와 욕심이 스르르 사라져버린다.
또한 할렘, 브루클린, 브롱스, 퀸즈, 롱아일랜드, 구석 구석 어디서나 마주치는 세탁소, 생선가게, 네일 가게를 하는 한인들이 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으로 오며 속으로 흘린 눈물, 그 흔적없는 눈물의 의미를 떠올리자.
울래야 우는 것이 아닌 저절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울고나면 속이 다 풀리는 시원한 눈물은 사랑과 미움, 갈등 그러한 것들을 아무런 색상과 무게가 없게 만들어 버린다. 시간이 아깝다, 또 한해가 지나간다.
해결책 없이 얽히고 설킨 채 이 해를 보내지 말고 한인들의 삭막한 가슴마다 인공 눈물 한방울이라도 떨구어 서로의 관계를 촉촉하게 해소시키자.
이 추위에 해고 통고를 받은 실직자, 먹고 살 꺼리를 찾아 길바닥을 헤매는 본국의 동포들을 위해서도 눈물 한 방울을 남겨두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