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신부(June Bride)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결혼의 달이다. 유월의 신부가 있으면 그 짝은 유월의 신랑이므로 봄엔 여자들이 시집을 많이 가고 가을엔 남자들이 장가를 많이 간다는 말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하겠다.
결혼이란 혼자서 하는 예식이 아니기에 말이다. 청첩장이 하나 둘 오더니 같은 날 겹치기로 참석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아는 문인 중 한 분은 토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세 군데의 결혼식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단다.
한 곳이 끝나자 바로 다음으로 다음으로 이동을 하다보니 세 결혼식에 참석하고도 밥 한끼 못 얻어먹었다고 해서 웃었다. 요즈음의 청첩장을 보면 개성이 돋보이고 재미있다. 우리 때의 궁체로 쓰여진 고전적인 청첩장에서 꽃무늬 일색의 고운 청첩장으로 가더니 이제는 사뭇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며칠 전 신랑의 찡그린 유치원 졸업사진과 신부의 어릴 적 촌티 나는 사진을 새긴 청첩장을 받고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었다.
교회의 새 가정부에 속한 신혼부부들이 예배시간에 특송을 한 적이 있었다. 고운 한복을 떨쳐입은 신부들과 깨끗이 이발하고 나온 신랑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를 하는데 환상이었다. 솔직히 노래보다는 누가 누구의 짝인가 맞춰보는 것에 더 관심이 갔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바라보다가 주책없이 눈두덩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났다.
그들의 눈부신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앞으로 그들이 살아야 할 결혼이라는 현실이 걱정이 되면서 마치 내가 그들의 이모쯤이라도 된 것 마냥.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다. "너희도 별 수 없이 코 꿰었구나" 하고 생각했다나.
젊은이들의 짝짓기를 보면 정말 고려해야 할 것은 간과한 채 외적인 조건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순서인지는 모르나 외모, 학벌, 경제력, 직업 등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체크리스트를 삼는다. 그런 세태 중에도 유머감각이 있는 신랑감을 신세대 신부들이 제일로 치고 있다니 신선하기까지 하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보고서는 물질만능주의에서 다시 인간성회복의 시대로 가는 것 같아 흐뭇한 기대를 가져보았다.
대학시절 ‘실내장식’이라는 과목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었다. 그 옛날 보기 드물게 여자로서 건축을 전공하신 선각자적인 분이시다. 나를 잘 보셨는지 중매를 서신 격이 되었다. 교수님의 후배이자 제자 뻘 되는 학생들 중에서 추천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어른들도 젊은이들의 선택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때의 나는 단속이 심한 공립 여학교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여자대학의 분방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온갖 미팅의 선봉에 섰던 제법 방탕한(?) 학생인 내게, 교수님이 신랑선택의 기준으로 성실함을 강조했던 걸 보면.
여류 건축가인 교수님이 소개한 건축과 남학생이 당연히 동화 속 왕자쯤일 줄 알았던 나는 착각 속에서 결혼하였다. 당시 TV의 연속극에 멋있는 건축설계사가 주인공으로 나온 것이 나의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하였다. 좋은 사무실에서 단정한 차림으로 비스듬한 제도판에 도면 그리는, 아티스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멋진 남성(탤런트 한진희였던가)을 상상하였었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건축설계가 아닌 건축시공이 전공이라나? 텍사스로 유학 와서 대학원에서 건설경영이라는 공부를 할 때까지도 설마설마했는데 자신의 말대로 ‘노가다’가 되었다. 매일 매일을 흙먼지 쓰고 사는 ‘노가다’. 나도 가끔은 현장에서 인스펙터를 대신 기다려 주는 ‘노가다 마누라’가 되었다. 이런 걸 두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하던가?
나는 유월에 결혼하는 많은 커플들이 정말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서로만 바라보았던 마주보던 시선에서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길 바란다. 그래서 환상이 깨지고 현실로 돌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멋진 항해를 하길 바란다. 백마 탄 왕자가 주술이 풀려 ‘노가다’로 변한다 해도 크게 놀라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먼 훗날 결혼에 대해 말할 때, 코가 꿰었다고 하기보단 아름다운 선택이었다고 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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