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길목에서...]
▶ 이기영 <본보 주필>
새해 정초에 뉴욕에서 발생한 첫 한인 살인사건은 나이 때문에 빚어졌다. 20대 청년 남녀들이 밤새도록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그 중 나이 많은 한 사람이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시비를 하다가 급기야 칼부림을 벌였다는 것이다.
나이타령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은 지나친 사건이지만 한국인의 관념 속에는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나이로 계측하는 습성이 누구에게나 다소간 배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교 때는 한 학년이 높다고 아래 학년 학생들에게 체벌을 주기가 일쑤였고 군대에서는 하루 먼저 입대했다고 상전노릇을 했다. 회사에서는 입사연도를 따져서 대우나 승진에 반영하고 관직에서는 고시회수를 중요시 한다.
심지어는 나이가 적은 사람의 아래에서 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로 여기는데 검사들의 경우 동기생이 검찰총장이 되면 그 동기생들은 모두 사표를 내는 것이 불문률이 되어 있다. ‘장유유서’를 바탕으로 해 온 동양적 사고방식 때문이리라.
나무가 나이를 먹으면 나이테가 늘고 고기는 비늘이 느는 것처럼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성장발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하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30세에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었고(而立) 40세에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不感)”고 했다.
또 “50세에 천명을 알았고(知命) 60세에는 듣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耳順) 70세에는 하고자 하는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從心)”고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사람이 크기 때문에 “나이 값도 못한다”는 욕설도 있다.
또 나이를 더 해가면서 사회적 위치도 확고해 진다. 예기에서는 10세에 배우기 시작하고(幼) 20세에 비로소 갓을 쓰며(弱) 30세에 가정을 꾸미고(壯) 40세에 벼슬을 하며(强) 50세에 관리가 되어 정사를 보고(艾·애) 60세에는 남을 부리고 지시한다(耆·기)고 했다.
그리고 70세에는 후진에게 전하고 80,90세에는 죄가 있어도 7세 어린이처럼 벌을 주지 않고 1백세에는 기리는 일만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인생 경력이 그만큼 화려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렇게 성장 발전하는 일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면에 쇠퇴의 일면도 있다. 사람의 체력은 25세를 절정으로 내리막길로 들어서며 40세부터는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한다.
특히 40대 중반부터 체력이 급강하하여 45세부터 56세까지를 초로기, 55세부터 65세까지를 점로기, 65세 이상을 노쇄기라고 한다. 이 3단계의 시기에 노화가 급진전하면서 성인병이 생긴다.
이 때가 되면 신체적인 변화와 함께 심리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지고 죽음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밀물처럼 밀려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젊은 시절에는 성장 발전하는 측면을 바라보면서 나이를 먹어가는데 40대 이후부터는 쇠퇴해 가는 측면을 바라보며 나이를 먹어간다. 그래서 40이 50이 되고 50이 60이 되는 과정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끔찍하기만 하고 자신의 나이를 애써 부인하고 싶은 충동마저 갖게 된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 이 나라가 참으로 무례하기 그지없는 나라처럼 보였는데 다시 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미 명퇴를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처럼 일하면서 살고 있는 것을 볼 때 노인을 노인 대접하지 않는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젊을 때도 어른들 보다 나이가 적다고 차별받지 않고 늙어서도 나이가 많다고 밀려나지 않는 미국식 사고방식이 한살 차이를 따지는 한국식 장유유서 보다는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이를 걱정하지 말자. 한 해가 가면 한 살씩 더 먹게 되는 연령은 어찌할 수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세월은 가라, 그러나 나는 가지 않는다고 외쳐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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