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 북한 발언 어떻게 볼 것인가
▶ 김용현(전 언론인)
지난달 29일 당신은 참으로 감동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그 날 당신은 올해 국정의 목표를 테러전에서의 승리와 국토방위, 그리고 경제회복으로 정하고 자신에 찬 정책을 밝혔는데 현장에 있었던 의원들이 얼마나 감동했으면 무려 70여차례나 기립박수를 했겠습니까?
의원들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승부욕이 유난히 강한데다 9.11 이후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일반 시민들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성과를 과시하며 앞으로 미국에 위협을 가하는 어떤 나라든지 가만두지 않겠다고 당찬 모습을 보일 때 얼마나 흥분되고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특별히 그 날 공화당원이나 군수업자 그리고 거기에 투자한 증권업자들은 아마도 일흔번에 일곱번씩이나 손이 터져라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아시아의 한 모퉁이 분단의 나라 저 코리아에서 건너와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은 그 날 몹시도 우울하고 착잡한 하루였으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마음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렇게 화해를 시도하고 통일을 이루려는 다른 한쪽이 ‘악의 축’이라고 매도를 당하다니 도무지 불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화도 났습니다. 내 자식, 내 형제가 병신일지라도 내가 욕을 하면 했지 남이 병신이라고 욕하는 것은 듣기 싫은 이치와 같을 것입니다.
무기를 많이 생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교전국도 아니고 미국에 해를 가해온 것도 아닌데 입으로는 대화를 하겠다면서 상대를 대화할 수 없는 코너로 몰고 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며 더구나 그 정권을 달래가며 정성스레 남북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한국 정부 지도자들에게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낭패감을 주고 대북 정책을 훼손시켜도 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초부터 부시 대통령께서는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던 데다 그 날 분위기는 승전의 여세를 몰아 20년만의 최대 규모인 480억달러의 국방예산 증액과 파문이 커지고 있는 엔론 스캔들을 정면 돌파하려는 정치적 속내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 것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 날 표현은 너무 도를 지나쳤고 돌멩이 하나에 파문은 너무 커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오는 20일 한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갖게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부시 대통령께서 잘 알고 계시다시피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의 하나이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해외 지역 가운데서 반미운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유일한 국가입니다.
한국 국민은 어려울 때 힘이 돼주었던 미국 정부에 대해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주한 미군의 주둔과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언제나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남북문제는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고 우리들 당사자가 자주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데도 때로 자존심을 꺾어가며 미국 행정부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 당신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당신께서 북쪽은 물론이지만 남쪽의 지도자도 어려운 입장으로 몰고 감으로써 오히려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계기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한국에 가면 아시겠지만 행여 북한 정권에 대해 체질적으로 혐오감을 갖고 있거나 현정부의 대북 정책에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한국 국민이 있다고 해서 그들에 미국 정부가 북한을 위협하고 전쟁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을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방법과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대화와 포용정책의 골간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으며 아무리 철부지라도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곧 남북 교전을 의미하고 그것은 한반도의 공멸로 이어진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 시점에서 북미간은 물론 남북간 긴장이 조성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서울 방문을 계기로 당신의 생각이 크게 바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론 북한 지도자들도 이 기회에 신뢰 회복을 위한 과감한 조처와 함께 그 알량한 자아도취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촉구합니다. 평화는 평화의 방법으로만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