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을 여행하다 어느 작은 타운의 여관에 묵을 기회가 있었다. 기차시간 때문에 다음날 아침 7시에 체크아웃을 하게 되었는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엔화가 한푼도 없었다. 택시도 타야 하고 열차 안에서 커피도 마시려면 잔돈이 필요했다. 여관 종업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100달러를 일본 돈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더니 여관의 경리담당 여직원이 아직 출근하지 않아 달러 시세를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이 돈 가진 것 있으면 적당한 시세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이 종업원 왈 "돈은 있지만 여관 규칙상 종업원이 손님에게 손해 끼치는 짓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다. 택시를 몇 시에 오라고 미리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좀 난감했다. "일본 사람이 정직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건 먹통이네. 손님에게 불편을 줘서야…"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여관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자기 차를 타라고 했다.
그리고는 타운에서 제일 큰 외국인용 관광호텔에 가 당직 지배인을 불러내 "우리 여관에 오신 손님이 달러를 바꾸려고 하는데 좀 편의를 봐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내가 기차시간을 걱정하자 "제 차로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50세가 넘어 보였다.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여관 종업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역에 도착한 후 팁 겸 택시요금 겸 고맙다는 인사로 돈을 주었더니 받지를 않는다. 게다가 "우리 여관 손님에게 봉사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역 안에까지 내 짐을 들어다 주었다.
나는 이 일본 여관 종업원에게 한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과 정직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몸에 배어있는 서비스 정신이다. 일본 상인들은 이익보다 사람을 중하게 여긴다. 몇년전 구리 료헤이라는 일본 작가가 쓴 소설 ‘우동 한 그릇’이 일본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내용은 별것 아니다.
섣달 그믐날 어느 우동가게에 가난한 어머니가 아들 2명을 데리고 들어와 "우동 한 그릇을 시켜 세 사람이 나누어 먹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하는 스토리다. 세 사람이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가게 주인 입장에서 보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우동가게 주인은 쾌히 승낙한다.
그 후 매년 섣달 그믐이면 나타나 우동 한 그릇을 시켜먹던 세모자가 어느 날 나타나지 않는다. 우동가게 주인은 이 불쌍한 어머니와 아들들을 위해 12월31일에는 가게의 한 테이블을 비워 놓고 기다린다. 아무리 손님들이 만원이라도 이 테이블만은 비워 놓는다. 이 소문이 타운에 퍼져 세모자를 만나려는 손님들로 연말에는 우동가게가 만원을 이루고 덕분에 이 가게도 번창한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 빈 테이블에 드디어 주인공들이 성공해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어머니와 아들들이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주고받는 대화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다. 자신들이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를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을 부엌에서 엿들은 가게 주인 부부는 눈시울을 붉히며 우동을 만든다.
몇년전 본보에 연재되었던 최인호 작 소설 ‘상도’(商道)가 요즘 MBV-TV 연속극으로 방영되고 있는데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화제인 것 같다.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극중에 등장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돈과 사람이 비교될 때 상인은 돈을 쫓고 사람은 못 보게 마련이다. 사슴을 쫓으면 산을 못 보는 법이다. 연속극을 보고 감탄만 할 일이 아니다. 감탄했으면 실행에 옮겨야 감탄하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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