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우리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어떤 이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늘 같은 모습으로, 같은 생각으로 생활하겠지만 그의 가치를 새삼 평가하게 되는 건 뜻밖의 사건이 계기가 돼 이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차인표(34)의 경우가 그렇다. 연예계에서 차인표는 ‘바른생활 사나이’로 통한다. 선배를 만나면 그 선배를 같은 장소에서 10번을 만나도 10번 모두 일어서서 정중히 인사한다.
그런 그가 최근 ‘007 시리즈’ 영화 출연 제의를 거부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또한 미국 영주권이 있었음에도 군대를 갔던 것도 유승준의 미국 시민권 취득과 맞물려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차인표는 “요즘 내게 쏟아지는 칭찬의 말들이 부담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 너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쉬웠을까. 배우라면 누구나 바라는 할리우드 영화, 그것도 인기작 출연인데.
미국 LA에서 전체 촬영되는 영화 <아이언 팜>(감독 육상효)의 후반작업을 하고 난 후 지난 5일 귀국한 그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지난해 10월 말 <아이언 팜> 촬영을 갔는데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다. 오디션을 본 차인표는 캐스팅 디렉터에게 대본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였기에 대본을 보고 난 후 결정하겠다는 말을 했죠. 물론 오디션 볼 때는 내가 뽑힌 것도 아니었으니 이 말은 주제넘을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한반도 정세와는 상관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영국에 있던 감독으로부터 출연이 확정됐다고 이메일이 온 것은 12월 31일이었다. 1월 2일 계약하기로 하고 대본을 읽었다. 영화에서 차인표가 맡게 될 역은 북한군. 그런데 대본에는 남ㆍ북한 양쪽 모두 자존심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북한은 철저히 테러리스트 국가로 설정돼 있고, 남한은 우리 국군없이 온통 미군이 주둔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더군요. 물론 영화는 픽션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또한 어느결에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에 한국인으로서 출연하고 싶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고, 곧바로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참 그 일이 화제가 되고 있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겨냥한 ‘악의 축’ 발언이 터져 나왔다. 한반도 긴장 상황이 초래됐고, 그의 결정은 그래서 더 화제가 됐다. 정치권에서조차 이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질 정도로 큰 관심을 보내왔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쉬리>에 출연하지 않았던 건 후회하는데 이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늘 두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던 걸 아쉬워했다.
군대를 갔다온 게 새삼 화제가 되는 것도 그에겐 이상하기만 하다. 차인표는 “물론 미국에서 살다왔지만, 전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살고 한국에서 활동할 거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지금 전 그저 <아이언팜>이 좋은 결과를 얻기만 기원합니다. 제가 안한다고 007 영화가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그냥 늘 출연작을 고민하는 배우일 뿐이죠.”
하지만 차인표처럼 국가 이미지를 위해 부와 명예를 포기하는 배우는 그리 많을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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