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글쓰는 이들의 모임을 치르고 난 며칠 뒤의 일이다. 평소에 날 아끼던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모임에서 실수한 일이 없었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참석했던 한사람이 크게 화를 내더란다. 나 때문에 불쾌했노라고...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교환교수로 한국에서 오신 문인의 강연회 겸 식사 모임이었는데 그날의 식대로 10불씩을 걷기로 하였다. 내가 돈 걷는 역을 맡았기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회비 10불"을 연발하게 되었다. 10불 10불 하려니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해서 내 딴엔 조크를 한답시고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오늘의 회비는..." 어쩌구 하면서 걷었었다. 평소에도 실없는 농담을 잘하는 편이고, 그렇게 해도 잘 넘어가던 터였다. 마침 친한 친구인 소설가 P 가 들어오기에 "오늘은 두 당 10불" 이랬다.
흔한 농담이고 그녀도 나도 웃고 지나갔는데, 엉뚱하게도 옆에서 듣던 이가 시험(?)에 든 것이다. 사람을 동물 취급하고 10불 짜리로 평가절하 했다나. 그래서 그녀의 입 공양으로 삽시간에 말많은 이들의 도마에 올려지게 된 것이었다. 의도와 달리 전해지는 말들 때문에 오해를 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옛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더니 같은 말도 누구에겐 농담으로, 어떤 이에겐 전혀 다르게 상처도 될 수 있는 모양이다.
오래 전 대학 다닐 때 사주를 잘 보시는 친구의 할머니로부터 사주풀이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역마살에 도화살이 있다고 하셨다. 옛날에 났으면 화류계 팔자라나. 그 팔자를 면하려면 늦도록 까지 글과 가까이 해야한다고 하셨다. 사주에 천문이 들어있어서 글과는 친하겠다고. 그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결혼 운인데 중혼 살이 끼어서 여러 번 하겠다고 놀랄 이야기를 하셨다. 연애를 수 차례 하다가 결혼하면 액땜 이 될 것이라고 위로하는 바람에, 그 말을 들은 후론 학문은 제쳐놓고 미팅에만 전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 나야 마지막의 결혼이 안심 할 결혼이 될 것이므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내가, 사주 팔자를 난생 처음 접하고선 신기한 나머지 그 당시 심취했었다. 사촌오빠가 보는 주역을 빌려다 보기도 하고 사주풀이법에 당사주 책까지 사서 갑을병정에 자축인묘 육갑을 지퍼 보며 남들에게 풀이도 해주고.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우습기도 하다. 지금은 그런 것에 관심도 믿음도 없다. 도사? 나 운명 철학가의 한마디에 평생이 좌우된다면 얼마나 가치 없는 삶이 될 것인가 말이다.
여고 동창회 송년 파티에 참석했던 후배는 사회자의 말 때문에 그만 상처를 받았다. 안 오겠다는 후배를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데려왔는데 그만 사회자가 막내들 나오라고 하더니 "무슨 막내가 이렇게 쇠었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다 그녀의 귀걸이를 싸구려 운운... 익살이 지나쳤다. 안 그래도 시종 유치한 듯하여 아슬아슬 했었는데. 역시 우리동창들과는 핀트가 안 맞았던 모양. 송년회가 끝난 며칠 후 후배가 신년인사 한다며 전화를 했다. 말끝에 다음부터는 동창회는 사양하겠다고 한다. 적지 아니 미안했다.
고향이 경상도인 남편은 ‘아구찜’ 이라는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친정 부모 모두 이북태생의 나는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이다. 남편은 친구 집에 가면 그 음식을 유난히 밝혀서 으레 남편을 위한 음식으로 그 댁에선 준비한다. 늘 신세지는 것 같아 미안한 나머지 나도 한번 해 보려고 친구의 부인에게 조리법을 물어서 만들어 본 날 이었다. 알려준 대로 아구도 미더덕도 콩나물도 다듬어 준비하고 끓였는데 내가 먹어보니 거의 환상적인 수준. 오랜만에 칭찬 좀 들어볼까 했더니. 현관을 들어서는 남편이 한마디한다. "웬 청국장?" 순간 괘씸하고 분해서 이 나이에 울었다는 게 아닌가. 말 한마디... 잘 생각해 보고 가려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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