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상전이 벽해 되어도 비켜설 곳이 있다”, “화가 복이 된다” 는 한국 속담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를 당하고 고생하는 사람도 좋은 때를 만나 운이 트일 날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고진감래(苦盡甘來), 전화위복(轉禍爲福) 같은 고사성어도 있다. 고생 끝에 좋은 일이 생기고 극한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면 살아나는 그러한 말들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한 말들 속에는 아무리 절대절명의 위기 속이라도 인간은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의지와 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연방센서스국이 발표한 1990-2000년 불법체류자 추산에 의하면 한인 불법체류자가 미 전역에 18만2,621명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9만3,295명, 여성은 8만9,326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신분이 불확실 하다보니 먹을 것이 없고 몸이 아파도 정부의 복지나 의료 혜택을 받을 엄두를 못내고 근처 약국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 파는 약 몇 봉지를 사먹고 버티기도 한다.
그러나 신분에 관계없이 심각한 질병인 경우에는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고 19세 미만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 역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저소득 가정과 임산부를 위한 식품 보조 프로그램도 있다. 또 이러한 처지의 한인들을 남몰래 도와주는 숨은 손길이 있어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싶다.
그 중 하나가 헬스 리치 프로그램이다. 극빈자를 대상으로 엄정히 심사하여 수천 달러가 드는 입원비와 수술비를 모두 무료로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이 존속하는데는 한인 2세 의사의 무료 봉사가 있기에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괜히 봉사정신 내세워서 바쁜 시간 쪼개 무료 수술 시행 하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환자가 소송을 걸어올 수 있다. 선행을 하려다 뉴욕주 의료 면허가 날아가는 경우를 당할 수야 없지 않느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몸을 도사리지 않고 자신의 전문 기술을 기꺼이 불법체류자나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1.5세, 여름 휴가 때면 언청이 수술 등 의료 봉사를 하는 2세 의사들이 있기에 한인 사회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물론 일에 치어 자신이 환자로 보일 정도인데도 쉬는 날인 수요일이면 의료보험 없는 한인을 무료진료 하는 1세 의사도 적지 않다.
취재를 하다보면 때로 도저히 수입과 지출이 안 맞는데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대답은 이렇다.“주위사람들이 옷도 갖다주고 김치도 갖다주고 한마디로 이웃의 온정으로 살지요. 세 살 된 아기 옷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준 적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로 도와줍니다.”
이렇게 따스한 손길을 베푸는 이민 1세들은 대부분 자신도 이민생활을 어렵게 보낸 사람들이다. 지금도 여유 있게 잘 살지는 못하지만 이들은 잘 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오히려 마음을 더 풍요롭게 쓴다.
“유학생 부부니 산간비를 조금만 받겠다.”, “다 큰 아이라 집에 와서 혼자 숙제하고 있다 가는데 무슨 돈을 받느냐.”, “손자 데리러 가는 길에 함께 집에 데리고 오는데 어떻게 베이비 시터 비를 받느냐”
생활비를 걱정해야 되는 젊은 부부들은 이렇게 고마운 경우를 대하게 되면 자신들도 힘이 자라는 한 또 다른 이웃에게 베풀면서 살려고 하게 된다.
부자가 달리 부자인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넉넉한 여유를 나눠주면 그것이 가장 큰 부자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아라비아 속담을 인용하면 “건강을 지닌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희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다.
한인 사회의 쥐구멍에 시원한 바람이 들게 하고 따스한 햇볕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 바로 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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