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역사를 바로잡기 원하는 한국의 문인단체에서 42명의 친일 문인들의 명단과 그에 관련된 작품 목록을 발표하였다. 그 이름들을 읽으면서 이제는 우리 민족이 어떠한 형태로든 일제 치하에서 겪었던 치욕과 참담함의 역사를 회피함 없이 똑바로 보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초월해야만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뜻 눈에 띄는 이름만 보아도 김동인, 노천명, 모윤숙, 백철, 서정주, 유진오, 이광수, 정비석, 주요한, 최남선 등 한결같이 우리가 중·고교의 교과서를 통해 우리 문학의 귀감이요 진수로서 읽을 것을 요구받았고 그 문체를 본받기 위해 애썼던 이들이다.
이들의 친일 행각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이 우리는 그들의 문학을 배웠고 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얼마나 일제가 악랄한 수탈과 탄압을 자행하였고 그에 대항하는 독립지사들이 얼마나 숭고하게 목숨을 바쳤는가를 배웠다.
좀 더 철이 나면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친일인사와 그들의 후손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사회의 지도층에서 활약을 하는 반면 목숨을 걸고 독립군으로서 졸병의 지위를 마다 않고 싸웠던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은 막노동으로 끼니를 연명하는 괴상한 현실이었다. 선생님들은 그것을 고결한 사람은 부를 탐하지 아니한다는 식의 논리로 얼버무렸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교육헌장을 선생님 앞에 나아가 큰 소리를 내어 외우면서 한편으로는 유관순 누나의 행적에 대한 숙제를 하던 우리 학교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희극의 한 장면과도 같다.
이런 식으로 해방 후 50년을 넘게 지나왔으니 참 우리 모두가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하기는 지금 한국의 정계의 꼴을 보면 정말로 모두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또 한편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엄연한 사실은 적어도 일부 친일 인사들의 있어서는 그들의 문화적 또는 사회적 업적과 공헌이 지울 수 없게 뚜렷하다는 것이다. 김활란 전 이대 총장이 없는 한국의 여성계를 생각할 수나 있을지, 미당 서정주를 빼놓고 한국의 현대시를 논할 수 있는지, 춘원 이광수가 없는 한국 문학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심지어 금서목록(월북했다는 혐의로)에서 풀린지 이제 10년이 채 안 되는 순수 서정시인 정지용도 열대의 외지에서 일본의 승리를 위하여 산화하는 젊은이의 죽음을 찬양하는 ‘이토’(異土)라는 시를 남겼다.
우리 민족의 정신건강을 위하여서라도 어떻게든 이 고민스러운 문제를 해결하여야만 할 것 같다. 언제까지 우리의 자식들에게 정신분열적인 두 가지의 상반된 사실을 계속하여 아무 설명도 없이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무책임한 일일뿐만 아니라 이를 계속하면서 정치적인 또는 사회적인 윤리를 운운하는 것조차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남아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철저한 인종차별에 시달려온 나라를 물려받으면서 이 문제부터 해결하였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에게 보상을 해주되 진실을 밝힌 가해자는 사면을 한다는 것이 주된 아이디어다.
대부분의 친일인사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할 처지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우선 진실을 (공과를 함께) 밝히고 그에 대한 국민적인 결단을 내리는 절차를 걸쳐 이제는 지긋지긋한 일제의 잔재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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