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간선거일인 5일의 거리모습은 여늬 날과 다름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였고 상점들은 문을 열었고 트럭은 물건을 부렸고 자동차 행렬은 줄을 이었다. 다만 투표구 마나 투표소가 설치되어 투표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드나드는 것만 한가지 평소와 다를 뿐이었다.
투표시간이 오전 7시부터 오후9시까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특정한 시간에 몰릴 필요도 없었다. 아침 출근 전에 잠깐 들러 투표한 사람과 저녁 퇴근길에 투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투표한 사람도 있었다.
투표소안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몇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설치해 놓은 투표기 앞에서는 투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유권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투표를 안내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자원봉사를 하는 할머니들이었다. 장내에서는 선거를 관리하는 사람들끼리 물어보고 대답하는 이야기, 아이들이 뛰고 떠드는 소리,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이름을 확인하고 사인을 하고 투표를 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말썽없이 낙엽처럼 한 표 한 표가 쌓여 미국정치를 결정했다.
이번선거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선거였다. 그래서 중간선거 치고는 선거전이 매우 치열했다. 공화당에서는 부시대통령과 체니부통령, 민주당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과 고어 전부통령이 전적으로 모금운동과 지원유세에 앞장섰다. TV등 홍보에 쏟아넣은 돈만도 9억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열띤 선거운동을 했다고 해서 미국유권자들이 똑같이 열을 받지 않는 것이 이번 선거 풍경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그런데 이에 비해 한국선거는 어떠한가.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는 정당과 후보자들 뿐만아니라 온 국민이 선거전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월드컵대회때 나타났던 국민들의 응원열기처럼 선거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월드컵때 축구 때문에 일상생활이 마비되다시피 했던 것처럼 선거철에는 선거때문에 일상생활이 마비되고 있다. 어디를 가나 선거이야기이고 누구를 만나도 선거이야기이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몰두한다. 한국선거와 직접관계가 없는 재미한인사회에서도 어느 후보를 막론하고 후원회 조직이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이런 선거 열풍이 노풍이니, 정풍이니 하는 돌개바람을 일으켰다가 열이 식으면서 바람이 사그러지는 진기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정치가 직업이고 선거를 통해 이 직업을 얻거나 잃는다. 그러므로 사생결단하고 선거에 매달린다. 그러나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은 정치가 직업이 아니다. 직업이 아닐뿐 아니라 정치를 직업으로 얻으려는 정치인에게 직업을 주고 주지않는 결정을 하는 주체이다.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최대한 이익이나 혜택을 줄수있는 정책을 내세워 표를 얻는 거래를 하려고 하고 국민은 그 거래 조건들을 비교 검토하여 유리한 쪽에 투표하는것이 민주주의 선거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정당과 정치인의 하수인이나 앞잡이가 되어 바람을 일으키는 한국의 정치풍토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은 투표로서 정치를 심판해 주는 심판관이며 특정정당이나 후보에게 정치를 맡기는 임명권자이다. 이번에는 국민들의 이런 주인의식을 제대로 살리는 선거를 해야할 것이다.
이기영 본보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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