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명 TV 앵커우먼이 미군기지에 화염병 투척사건을 보도하며 “부끄럽다”고 한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사임까지 하고야 말았다.
“무엇이 부끄러운가?”고 빗발치는 시청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사임했다 한다. 반미감정의 확산에 대한 우려에 혹자는 “반미가 아니라 민족 자존심을 찾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부끄러운 일” “반미” “민족의 자존심 찾기” 등등이 엇갈려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우리 재미동포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실은 일련의 부끄러운 일 시리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어도 배우기전부터 실시하는 조기 영어교육, 조기유학, 그리고 유창한 영어발음을 위한 답시고 혀 밑 설소대(frenulum)절제술도 마다 않는다는 교육열(?) 등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민 엑스포에 인파가 몰려들고원정출산을 위해 몰려오는 임산부들, 이런 일들이 또 다른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었다. 더욱 부끄러웠던 일은 노벨상 평화상수상 저지 운동 그리고 노벨상 수상 로비설 운운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철없는 행동은 로비활동의 유무에 관계없이 수치스런 우리의 모습이었다. 모국 대통령의 방미 시 당한 푸대접에 박수치던 손바닥과 ‘북한 악의 축’ 지칭을 환영하던 사대주의 입술이 나는 부끄러웠다.
민족의 자존심을 구기는 사건들도 있었다. 외제차를 수입을 늘리기 위해 가해진 배기량기준의 세법개정 압력, 외제 위스키수입을 위한 주세 조정압력, 승용차/트럭의 차종 분류기준조정 압력, 등등에 밀리기만 하던 외교통상의 굴욕적 자세, 이런 일들이 민족자존심을 구겨갔다.
급기야는 위스키 소비증가율이 1위가 되고 교통사고 사망률도 1위국에 육박하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한국만큼이나 철저히 친미노선을 따라온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것을 버리고 서구화/미국화에만 줄달음쳐 온 교육 문화정책, 사대주의적 외교, 민족전통을 무시한 법제도의 미국화, 등등이 실은 민족자존심을 구기며 또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이제 미국/서구문화에 대한 애증의 기로에 서서 분출하는 반미감정의 폭발은 부끄러운 일이기 보다는 아이러니이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일도 혹은 자존심을 구기는 일도 모두 우리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족자존심 자체는 누군가가 뺏어가고 싸워서 되 찾아오는 그런 물질적인 것은 아니다. 민족자존심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구체화된 일도 아니다. 민족자존심은 한민족 우리들 자신의 가슴속에서 키우고 찾아야한다. 화염병투척이나 반미시위를 통해서 찾는 다거나 미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고 미군 두명을 감옥에 넣고 혹은 소파협정에 한 두어 구절을 고치는 등으로 민족자존심이 얼마나 회복될까?
물론 소파협정은 당연히 개정되겠지만 근본적인 접근방법은 우선 “사람이 죽었는데 가해자는 벌을 받지 않다니”식의 한풀이성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족자존심의 회복은 요구관절을 위한 외적 투쟁을 통함이 아니요 내적인 인식변화를 통한 자중자애(自重自愛)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미도 반미도 아닌 자애(自愛)가 우선 이다.
기왕의 반미감정의 핵 폭발 만큼이나 강한 열기도 승화 시켜가야 한다. 핵 폭발은 ‘라면’ 한 그릇도 끓일 수 없는 오로지 파괴적 에너지를 방출하지만 이 핵에너지를 원자로 안에서 서서히 태울 때는 막대한 생산적인 민족에너지로 변할 수도 있다.
짧은 생을 어이없이 마친 이 여중생들의 죽음의 계기로 지을 수 있는 원자로 안에서 부끄러운 행위들을 녹여버리고 자랑스런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민족자존심의 회복이다.
분노의 핵 폭탄일랑은 그만 터트리고 막대한 에너지를 보다 생산적으로 태울 수 있는 원자로를 만들어가자. 이 원자로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질서, 절제, 한계와 분수, 합리, 화합, 그리고 은근과 끈기 속에 (분노와 한의) 원자핵을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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