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던 16대 한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막판에 단일화 바람을 타고 극적으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이번 선거는 한국 역사상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학력도 돈도 계보도 없는 노 후보가 인터넷을 안방처럼 넘나드는 20~30대의 지지를 기반으로 전통적 한국 지도 계층을 대변하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른 것은 한국에서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역 간의 심한 편차와 함께 세대간 사고방식의 깊은 골을 드러냈다. 당선이 확정된 후 노 후보가 밝힌 대로 자신을 지지한 사람뿐만 아니라 반대한 사람도 함께 끌어안는 포용력을 보일 수 있느냐가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재는 첫 번째 잣대가 될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시급한 것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이 선거 기간과 맞물리면서 급속히 번지고 있는 한국민들의 반미감정을 어떻게 푸느냐이다.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미군을 한국을 북한의 남침에서 구해준 우방이라기보다는 한국민을 우습게 아는 점령군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군사정권들이 국민들은 탄압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저자세로 임한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현재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다.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주한 미군이 철수하고 미국 투자가들이 떠난다면 한국이 얻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노 당선자는 한미관계에 불평등한 부분을 고치는 노력과 함께 우발적인 사고를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 단절로 몰고 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미관계의 악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200만이 넘는 미주 한인들에게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 9·11 테러 이후 가뜩이나 외국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 지금 한국에서 성조기를 불태우고 북한을 편드는 듯한 발언이 계속 나올 경우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와 우리 2세들의 입지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600만을 헤아리는 해외 한인들은 따지고 보면 한국의 귀중한 재산이다. 화교 상권이 중국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잘만 활용하면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국이 널리 도약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한 경험이 있는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인식하고 재외 동포법 등을 제정, 해외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성의를 보여줬다. 지금 이 법은 위헌판결을 받고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 노 당선자가 해외 동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이 법의 향배에 얼마만큼 관심을 보이느냐와 직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당선자는 유세 기간 “미국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후보로서는 그럴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 대통령으로서 그런 자세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도 그렇고 미주 한인들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미국은 자주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온갖 역경을 딛고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된 노 당선자의 승리를 축하하며 한국민 뿐만 아니라 모든 해외 동포를 껴안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