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것이 사실인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물어도 아직 실감이 가지 않는 것이 노무현씨의 당선이다. 불과 10년 전에 권력을 잡고 있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손을 좀 봐줘야 할 만한’ 급진파가 아닌가?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 학연이 있나, 혈연이 있나, 뭐라고 내놓을만한 지연이 있나 (지연도 가문이 있어야 맺어지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김대중 대통령처럼 일생을 걸쳐 꾸준하게 모아 놓은 가신들이 있나.
게다가 이제까지의 행적을 보면 다른 사람들처럼 정치 9단 짜리의 능구렁이 술수나 약삭빠른 줄서기도 할 줄 모르는 그야말로 자칭 타칭 바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씨도 경이롭지만 더욱 더 경이로운 것은 그렇게도 줄기차게 변화를 갈구하며 대통령들을 뽑아 왔건만 똑 같은 작태를 반복하는 그들의 추한 모습에 낙망하지 않고 세계인의 의표를 찌르고 이 사람을 뽑은 우리 국민들의 꺾을 수 없는 끈질김이다.
대한민국 금수강산이 어떠한 땅인가. 무슨 묘한 조화가 있는지 몰라도 압록강과 현해탄만 건너오면 곡식과 채소 맛이 달라지고 과일 맛이 달라진다. 똑 같은 쌀, 마늘, 고추, 사과이련만, 중국과 일본에서 나는 것들의 맛과 우리나라의 것들의 맛이 비교가 안 된다.
그러면서도 지정학적으로는 마치 타민족의 침략을 받기 위하여 일부러 만들어진 것 같이 묘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역사의 문외한이 보아도 이러한 곳에 한 민족이, 그것도 소수 민족이 4, 5,000년을 계속하여 독자성을 유지하고 살기는 불가능해 보이는 곳이다.
어떤 역사학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700 차례 이상의 침략을 다른 민족에 의하여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고난 속에 줄기차게 나라를 유지해 온 것은 무어라고 하든 간에 꺾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끈질김이 성취한 위대한 업적이다.
그 끈질긴 민족이 올바른 지도자를 가졌을 때 이루어 놓은 거의 신화적인 승리의 발자취를 우리는 역사에서 본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당 태종의 끈질긴 공격을 눈부신 전략으로 물리친 고구려의 승리, 제해권을 장악하여 나라를 끝까지 지킨 이순신 장군의 연이은 바다의 승리 등이다.
올바른 지도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런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몇 달 전 월드컵 4강 제패는 어떠한가. 그것이 히딩크 감독의 작품이라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미심장한 것은 히딩크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비밀은 바로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지연과학연과 혈연을 일체 무시한 실력 위주의 선수 기용과 철저한 기본기술의 연마가 그가 말하는 비밀이다.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를 만나자 우리의 축구팀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만한 위업을 성취하였다.
얼마 전 무슨 게이트다, 무슨 게이트다 하며 하루가 멀다시피 앞을 다투어 터져 나오는 부정과 부패와 비리의 연속 속에서 김대통령의 아들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도 지도자 운이 없을까 한탄을 하던 생각이 난다. 바로 상식과 원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지도자 연 하기 때문이다. 상식과 원칙, 그것이 그렇게도 힘든 부탁일까.
이제 손해를 보더라도 갈 길을 간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지연, 학연, 혈연을 따지지 않고, 꿍꿍이 정치 9단의 재간도 없는 대통령,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대통령, 과연 이것이 사실인가. 다시 한번 우리는 이번에는 그래도. 하는 기대를 해보아도 되는 걸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그를 뽑은 끈질긴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앞날이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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