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중생 사망을 불러온 장갑차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핵문제로 한국에 관한 뉴스가 연일 계속되면서 미국인들의 반한(反韓) 감정이 우려되는 양상을 띄고 있다.
미 주류 언론 및 방송매체들의 헤드라인은 지난 2개월여간 북핵 및 한국내 반미시위로 도배질되고 있는 실정이며, 최근 백악관이 서둘러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미 국방부마저 비공식이라는 단서를 달아 ‘주한미군 축소 검토’를 밝힌 바 있다.
발단은 여중생 사망으로 인한 촛불시위가 소파(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개정으로 옮겨지면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일부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찢고 불태우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처럼 반미 시위가 격렬한 양상을 보이며 계속되자 뉴욕타임스는 칼럼에서 ‘주한미군 철수하라’는 주장을 제기했고, 워싱턴 포스트 등 다른 메이저 신문들도 참전용사를 인터뷰 해 ‘은혜 저버린 한국’이라는 표현으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설상가상으로 주한미군이 한국인들에 맞아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미국 TV에 방영되면서 인터넷에 한국을 비방하는 글들이 시민들 사이에서 돌기시작, 미국내 대도시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반한감정이 일어 미주한인들은 좌불안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는 “6.25 전쟁때 혈맹 관계를 맺은 최대 맹방인 한국에서 반미정서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발생,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고, 또 북핵과 맞물려 있어 미국인들이 당혹과 우려를 넘어 반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특히 워싱턴의 여론주도층에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날 경우 그동안 한반도 평화유지에 큰 역할을 해 온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경우에 따라선 극단적으로 철군 결정도 완전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마저 나온다"고 덧붙였다.
한국내 시위가 주권국에서 일어나는 자주권 행사라는 의미에서 결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모든 협정은 당사자들이 상대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선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 월드컵 때의 시민의식, 여중생 추모를 위한 초기 촛불시위의 순수함, 그리고 대선에서 한국 젊은이들은 커다란 희망을 보여주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대학가의 운동권이 급격히 퇴조하던 90년대, 불의를 보고도 분개할 줄 모르던 유약하고 이기적인 그 젊은이들이 인터넷 혁명을 타고 변모한 것이다. 사회에 뛰어들어 참여하고 있는 그들의 당당한 자신감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개혁을 주도한다는 데서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다.
허지만 절제되지 못한 과격한 행동으로 협상자체를 파행으로 치닫케 한다던지 성조기를 찢고 태우는 등의 상대국을 모독하는 행위나 무조건 인정치 않으려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처사다. 역으로 다른 나라에서 우리 태극기를 찢고 불태운다고 생각해 보라.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이런식의 비신사적인 방법으론 협상이 될 수 없다.
대한상의, 전경련, 경총, 무역협회, 중소기협중앙회 등 경제 5단체는 최근 반미시위 확산을 자제해 달라는 대(對)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한국 내 반미운동은 미국 내 반한 감정과 한국상품 불매운동을 불러일으켜 한국 경제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대미 수출이 전체의 20.7%를 차지했으며, 역시 지난해 1~8월 사이에 총외국인투자 67억달러 가운데 40억달러(60.2%)가 미국으로부터의 투자였다. 감정에 치우친 대응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이 설 땅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며, 반미 시위가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켜 고용을 줄이는 등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의 현상은 시민들의 참여라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오만은 경계해야 한다. 불합리하고 이치에 맞지 않은 것에 대한 투쟁은 백번 옳고, 당연히 불의에 맞서야 하지만 정부를 믿고 정부가 바르게 일을 성사시켜 가도록 압박 또는 견제하고 기다리는 것이 더 옳은 시민운동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은 정부 당국자간에 협상을 할 것이므로 시민단체는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 어떤 것이 더 득이 되는 지 판단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무능하면 선거 때 시민의 힘으로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어떤 일이고 선후가 있게 마련이다. 질서가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획일적인 질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다기한 현대 사회에서 다방향의 여러 의견이 오가는 복합적인 현상일수록 더욱 질서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상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절제하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시민 운동이야말로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편집·취재부장/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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