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60, 70대가 10, 20대였을 때만 해도 세상이 시끄럽기는 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느린 탓으로 매사를 차분하게 대처하는 습성이 있었다. ‘빨리 빨리’는 불이 났을 때나 쓰는 말이고, 스트레스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었다. 오죽하면 ‘굼벵이 타령’이 있었을까.
이렇게 조용하게 살다가 본국행 비행기를 타보면 사정은 다르다. 우선 공항에 내리기 전후부터 매사가 “빨리 빨리”에 밀려 어리둥절하게 된다. 착륙전 기내의 얘기는 제쳐놓고, 우선 여기에서는 듣기 힘든 자동차 경적소리, 그리고 전철에서 버스에서 공중전화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온통 “빨리 빨리”다. 그런데 누군가는 “여기서도 안 그런 줄 아는가. 골프장이나 한국 식당에 가 보면 ‘빨리 빨리’가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 이 습성이 왔을까. 우리 민족은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차분했었다. 농경사회라고 하는 느긋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만 보아도 숙성이라는 발효기간을 거쳐 만들어지고, 음악 역시 서양의 음악보다 느리다. 우리의 전통 춤 또한 격렬하지 않고 ‘덩실덩실’이다. 돈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승용차 안에 속도 계기가 생기는 바람에, 오나가나 경쟁 때문에 이 같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빨리 빨리”를 강요했음직하다.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측량사가 원주민들을 고용하여 험한 정글을 횡단하고 있었다. 얼마쯤 가다가 원주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길에 주저앉았다. 측량사가 품삯이 적어 파업한 것으로 알고 넉넉하게 품삯을 주겠다고 하자 원주민 추장이 “그게 아니고 마음과 몸이 성급하여 영혼을 앞지르면 변고가 생기기에 이렇게 숨을 돌려 쉬었다 가자는 것이요”라고 했다.
또 만성 조울증에 해당하는 우화 하나가 있다. 동작이 빠른 사람이 출세가 빠르다고 생각한 한 영감이 사위를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성급한 놈 하나를 발견했다. 측간에 들면서 허리끈이 잘 풀리지 않자 주머니칼을 꺼내어 자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너 사위 삼겠으니 날을 잡자고 하니까 “날 잡을 것 뭐 있습니까 오늘 밤 해 치웁시다”했다. “아따 그놈 되게 출세 빠르겠다”하고 신방을 차려 주었다. 이른 새벽에 신부 비명 소리가 들려 영감이 놀라 달려가 보았더니 신랑 놈 빗자루 거꾸로 들고 “하룻밤 잤으면 애를 낳아야 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에르 쌍소는 자신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느림이란 빠름에 적응할 수 있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자유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은 봄을 조용하게 열고 있는데 사람들은 왠지 들뜨고 서두르고 있는 기색이다. 더욱이 젊은이는 봄과 충돌하기 쉬운 계절이다. 이럴 때일수록 각자가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린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 기본과 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장익환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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