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보다 더한 것이 배고픔이요, 배고픔보다 못 참을 건 외로움이요, 외로움보다 못 견디는 건 그리움이다. 기다리지도 않은 봄이 벌써 와서 그리움 병을 도지게 한다.
"외로워 죽고 싶다"는 말들이 도처에 난무한다. 외롭다고 하늘을 향해 소리쳐도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세상, 죽고 싶지만 혼자 죽기는 너무나 억울하여 지하철 속의 수백명 생명을 횡령하는 광기 어린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것만도 사치라는 생각을 한다.
부두에서 하역을 하고 생선을 배달하는 노총각이 있었다. 바닷가에 아담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꿈같은 신혼생활을 보내면서 아들도 낳았다. 남자는 돈 많이 벌어 선장이 되어 아내를 호강시켜 주겠다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로 배달을 가다가 뺑소니 차량에 치어 허리를 심하게 다쳐 그 몸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없었다. 어느 곳 한 군데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절망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술로 자학하며 "죽고 싶다"고 외쳐댔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러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시작했다. 온갖 냉소와 명시를 이겨내며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을 하던 남편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 앞에 섰을 때, 아내와 아들의 대화에 또다시 절망한다.
"아빠 직업이 뭐야? 학교에서 써 오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목욕 관리사란다." "그건 때밀이 아냐? 애들이 놀린단 말이야. 난 싫어, 싫어" 집을 뛰쳐나와 술에 취해 돌아왔다. 아내는 갓 태어난 둘째 놈을 좀 안아주라며 아이를 건넨다. 남편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목이 메인다.
다음 날도 목욕탕에서 일을 했다. 발가벗은 아들이 등뒤에서 "아빠"하고 부른다. "아빠, 난 아빠가 안 창피해,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빠를 사랑해, 나 등 밀어 줘" 하는 아들의 말에 둘은 부둥켜안고 어루만지며 울었다.
그 날 이후 그의 생활은 희망으로 변했다. 때밀이만 하지 않고 손님들의 구도도 닦고 마사지 공부도 했다. 단골과 팁이 늘어 수입도 좋아졌다. 가족들의 사랑이 그를 파멸에서 건져냈다. 오늘도 그는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날임에도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찾아가 무료로 목욕을 시켜주며 즐거움과 보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사치스런 외로움 타령이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본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TV 다큐멘터리의 장면들이다.
또 며칠 전 이런 기사를 접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손이요 가수로도 알려진 이석씨가 짐도 없이 무일푼으로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친구들이 주는 용돈으로 살아간다며 "경북궁으로 차로 돌진하여 죽고 싶다"라는 제목과 함께 세월의 두께를 느끼게 하는 얼굴이지만 세련된 정장 차림으로 목욕탕을 나서는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보면서 무상함과 적막함을 금할 길 없었다. 나는 그를 추호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두 사람이 너무 대조적이란 것을 생각할 뿐이다.
똑같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목욕탕에서 보내지만 한 사람은 그 곳이 눈비와 바람을 피하고 단지 수면을 취하는 절망의 ‘처소’인가 하면 한 사람에겐 그 곳은 삶 속에 활력을 생산에 주는 희망의 ‘일터’라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것들은 날줄과 씨줄의 되어 우리들 마음에 세월을 엮어 그물을 친다. 그렇다해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기 보다 그것들을 껴안고 보듬으며 바다 속의 조개가 모래를 토해내며 진주를 만들어내듯 삶 속에서 영원을 잉태시켜야 한다.
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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