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연일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전쟁상황을 보면 착찹한 마음이 든다. 특히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라크 공격은 우리에겐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다.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테러지원의 줄을 끊겠다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명분이다. 또 9.11테러로 인해 위협받는 세계평화를 위해 미국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유엔 안보리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말이 연합군이지 사실상 미군을 주축으로 해 영국군이 가세한 정도일 뿐이다. 이라크에 의해 점령된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던 걸프전보다 훨씬 명분과 지원면에서 약한 것이 사실이다.
군사전력면에서 이라크는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없으며, 시가전과 게릴라전으로 미군측 피해가 크다 해도 바그다드 점령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끝나고 난 후의 상황일 것이다.
후세인 제거를 통해 이라크의 “체제 변화” (regime change)”에 성공한 미국은 보다 우호적인 정부을 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서는 이라크 정부가 후세인 보다 더 민주적이라는 보장도 또 이라크인의 지지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계속되는 미사일과 폭격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많은 이라크인들은 결코 미국의 행위를 잊지 못할 것이다.
반미주의와 테러주의는 더욱 더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에게는 악으로 보이는 후세인이지만 많은 이라크인 아니 많은 이슬람계 중동인에게 있어 후세인은 이슬람을 대표해 미제국주의와 싸운 선지자로 추앙될 것 이다.
따라서 후세인후에 등장하는 이라크 지도부는 미국의 앞잡이로 여겨져 대중적 지지를 얻기가 어렵게 되고 체제유지를 위해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위해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머지않아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될지 모른다. 결국 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 내 세우는 테러리즘의 제거나 민주적인 정부 수립은 커녕 이를 다시 제거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 역시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1980년대에 지원했던 이라크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다수의 유럽국가들이 등을 돌린 점 또한 미국의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냉전종식이후 프랑스 독일등에 의해 주도되던 유럽주의는 이번을 계기로 더욱 더 가속화 될 것이며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와 같은 미국 주도의 안보체제는 약화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게 최대 관심사는 아무래도 이라크전 이후 전개될 북한문제이다. 이라크전은 대략 5월전에는 일단 마무리 될 것이며 이후에는 북한문제가 미국안보의 최대이슈로 떠 오르게 될 것이다. 이라크전에 성공할 경우 매파의 목소리가 커져 대북한 군사행동을 하자는 주장이 강화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이라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힐 경우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북한 제재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한국으로선 이미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의 이라크전을 못 본척 할 수 없어 비전투 병력을 파견하겠다지만 세계의 반전 여론에 역행할 뿐 아니라 미국의 대 이라크 무력행사는 지원하면서 대 북한 무력행사는 반대한다는 자기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은 한반도 최대의 고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대통령이 연일 한반도에 전쟁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우방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을 감행한 부시정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국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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