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주인이 아침에 구두를 신으려고 하니 하인이 구두를 닦아놓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이 하인을 나무랐다. 그 때 하인이 말하기를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것인데요”라고 하였다.
주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다음 날 아침 하인에게 식사할 것을 주지 않았다. 하인이 불평을 하자 주인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다시 배가 고플 게 아니냐”
사실 날마다 되풀이해야 하는 일상생활은 단조롭고 따분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중의 하나라도 생략하면 생활의 리듬이 깨져서 불편을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그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던 생활을 그리워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의 병실에 찾아갔더니 “나도 빨리 나아서 장바구니 들고 시장에 가고 싶어”라고 하였다. 지금쯤은 지긋지긋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시장에 가고 싶다니…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른 즐거운 일들도 생각나지만 매일 거듭해야 하던 소위 하찮은 일들이 더 하고 싶어진다고 하였다. 결국은 그 일들이 건강한 생활을 지탱하였고, 안식처를 꾸려 나가게 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다. 최전선은 먼 중동이지만 모든 미디어가 보도하는 전쟁뉴스 속에서 호흡하고 있다. 여기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마음이 좀처럼 편하지 않다.
전쟁의 와중에 있는 바그다드의 이라크인들도 일상생활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조각이나마 찾아 모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보도에 인용된 여인은 폭격 사이사이에 정원을 찾아 꽃을 심는다고 하였다. 또 어린이들은 공차기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슈나 이벤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단순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상황에서 생활의 바탕이 어지럽게 되면, 그 특별한 일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평소처럼 생활하라고 부르짖는 것은 일상생활을 평상시처럼 이어가라는 것이 된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전쟁은 드넓은 싸움터에서 맹렬한 기세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전쟁이 빨리 끝나도록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또 전쟁에 참가한 장병들이 무사히 귀환하도록 기원할 수밖에 없다. 뼈아픈 전쟁의 체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한 관심도 크고, 염려도 남다른 것이 있다.
때로는 한사람의 행위가 역사를 바꿀 수도 있지만, 대체로 세상의 흐름에서 한 사람의 영향력은 미미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속해 있는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주기에는 힘이 너무 미약하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거세었던 반전운동을 보면 의사 표시는 자유롭지만 그 영향력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다양한 세계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개인의 의사 존중이고, 개인의 생활 보호라고 안다.
전쟁, 이에 관련한 의견 차이 등이 개인의 판단을 어렵게 하면서 우리들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어지는 일상 생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외적인 상황이 복잡다단한 때에, 더욱 그 무게를 알게 하는 것이 조용하고 잔잔한 일상생활이 아닌가. 다람쥐가 아무 생각 없이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도 속도와 강약의 진보가 있다.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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