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에는 미국에서도 비행기 한번 타보려면 5달러를 내고 줄서서 기다려야 했다. 실컷 타보는 것이 소원인 프라이-이벤에게는 정말 감질나는 일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부모는 물론 약혼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보니 엔진소리가 어찌나 큰지 승객에게는 귀를 틀어막는 솜을 나누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세상에 비행기 타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어 보였다. 산 위를 나르면서 미시시피강에 반영된 달빛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아름다운 구름 사이를 지나 오마하와 시카고를 한눈으로 볼 수 있는 이상의 즐거움이 또 있을까. 1,000피드 상공을 시속 100마일로 날다 보니 프라이양은 자기 집 앞을 지날 때면 비행기의 창문을 열고 뒤뜰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할머니에게 손수건을 흔들기도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군 복무하던 시절 사단 항공대의 2인 승 L-19 경비행기 타던 생각이 났다. 강원도의 수려한 산을 끼고 흐르는 홍천강의 은빛 물줄기, 개미 같이 작은 차와 사람들이 다니는 맨질맨질하게 다져진 길, 서로 불만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이는 옹기종기 다정한 집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가슴 뭉클한 정감 그 자체였다.
버스가 숨차게 삼마치 고개를 넘어 원주로 가고 있다. 완행 버스면 한나절은 걸리겠지. 그 순간 내 생명을 쥐고 있는 조종사 정 중위의 목덜미가 믿음직스러웠다. 비행기는 바람에 흔들대면서 원주 군사령부를 불과 십 몇 분만에 도착했던 것 같다.
울진 간첩 소탕 작전으로 부대가 한달 이상을 겨울 산 속에서 전투할 때도 봉급 등 경비를 지급하기 위해 경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비행기 아래 가까운 산에서는 총소리들이 요란했다. 정말 오금 졸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내가 비행기를 타기 전날 항공 참모는 간첩들의 자수 권고 삐라를 뿌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앞의 산에 부딪쳐 순직했었다. 우리 하숙집 비행대장 김 대위는 목숨 건 직무 때문인지 밤마다 폭주를 해야 잠이 들었다. 그가 안개 또는 갑자기 내리는 폭우 때문에 학교 운동장에 비상 착륙하던 이야기들은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했다.
제대 말년에는 헬리콥터도 타 보았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 특수 훈련을 받던 때였다. 헬리콥터는 눈으로 쌓인 산 정상에서 착륙하지 않고 지휘관은 완전 군장한 우리들에게 뛰어 내리라고 명령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훈련장까지 선착순 집합하라는 것이다. 지금도 헬리콥터만 보면 눈 속에 묻혀 총만 보이던 그때의 전우들 생각이 난다.
제대 후에는 그럴듯한 국내선 여객기로 광주 부산 제주를 출장 다녔다.
50년대에는 한달 걸려 배를 타고 미국에 왔지만 그 후에는 모든 이들이 13시간이면 3만피트 상공을 550마일 속도의 점보비행기를 이용했다.
80년대 초 동포사회의 유행어는 유현수씨의 책제목처럼 ‘KAL 타고 왔습니다’였다. 지금도 비행기 덕분에 해외 동포들은 고국을 이웃으로 느끼며 산다. 인류 문명의 상징인 비행기의 효용은 새처럼 나르고 싶은 낭만적인 욕망의 충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동시 소모되는 시간의 파격적인 단축에 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 비행기는 폭격기로 최첨단 살상 및 파괴의 무기로 등장한다. 년 전에는 9월 11일 뉴욕의 가을 하늘을 평화롭게 날던 여객기가 별안간 무기로 돌변하여 거대한 빌딩 두 개를 박살내지 않았 던가.
베이만에 나가보면 물새들이 파도 위를 유연하게 비행한다. 비행기처럼 가슴에 감추어두었던 다리를 펴고 사뿐히 내려앉기도 한다. 오클랜드 공항으로 내려앉는 여객기처럼 불안하지 않은 정말 평화로운 모습이다.
힐렌이라는 랍비는 “인생의 최고 목적은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오게 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편리하게 만든 문명의 기기들은 결국 인류의 멸망에 일조하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평화로움으로는 새에도 못 미치는 비행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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