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집에 방문을 하였는데, 대학생인 그 집 딸이 학기 중에 집에 와 있었다. 한 학기 쉬고 있다고 하였다. 예전에 좋아하던 일도 귀찮아하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딸을 보면서 그 엄마는 어찌 할 바 몰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야 할지를 상의하였다. 그러면서 딸이 한 학기 쉬는 것이 무슨 죄나 되는 것처럼 남에게 알리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발레리나는 다리가 길어야 해요. 짧은 다리를 길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바짝 마르면 다리가 길어 보일 것 같아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면서 무용연습을 했어요”
미국아이들 틈에서 프리마돈나를 꿈꾸던 발레리나의 고민을 들었다.
지금 대학교 3학년인 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하여 무용밖에 모르고 살았다 한다. 그 엄마는 딸을 세계적인 무용가로 만들려는 꿈을 안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없는 미국 땅으로 어린 딸 손을 잡고 십여 년 전에 여행자로 온 것이다. 조기 유학 케이스이다.
동양에서 온 어린아이가 자취하면서 무용가의 꿈을 꾸며 열심히 연습하는 게 기특하였던지 미국인 무용선생이 그녀를 친딸처럼 돌보아주었기에 오히려 한국에서 보다 발레공부를 훨씬 쉽게 할 수 있었다 한다.
발레리나는 타고나야 한단다. 발레리나로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노력만으로는 안 된단다. 다리가 길어야하고 키가 커도 안되고 작아도 안 되는 완벽한 체형으로 태어나야 한단다.
사춘기가 되면서 자신의 체형에 대한 열등의식이 생겼다 한다. 동양사람 전형적인 짧은 다리 때문에 고민하던 그녀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여 바짝 마르면 다리가 길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환상을 붙잡고 자신을 혹사하였다. 자신의 체형으로는 발레리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더 계속하였다 한다.
대학 3학년이 되어 꿈이 깨진 것을 인정하는 순간, 사는데 의미를 잃어버리는 혼돈이 온 것이다.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무용 연습을 하면서 지나친 다이어트를 한 탓에 딸이 월경이 멈춘 지가 거의 일년이나 되었다며 그 엄마가 걱정을 하였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으면 자연적인 생리현상마저도 뒤죽박죽이 되어 이제 스무 살 난 처녀가 갱년기 증세를 나타내고 있을까.
“아니 얘가 왜 이래? 왜 전에 하지 않던 짓을 하니?” 하면서 당황해 하는 엄마의 반응을 접하면서 딸은 혼자 외로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이해하여주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에게 실망을 안겨준 죄책감으로 우울증은 더 심하여 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살과 뼈를 깎는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한 발레리나의 겉모습은 마치 백조처럼 고요하였다. 그러나 꿈을 상실한 그녀는 공허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돈에 빠져 갈등하고 있다. 백조가 물위에 여유있고 우아하게 떠있지만, 물밑에 있는 백조의 발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신음하며 아파하고 있다. 하늘을 훨훨 날아야 할 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져 푸드덕거리는 것처럼 그녀는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민 1세의 부담을 소리 없이 감당하며 “착하고 공부 잘하며 잘 자라온” 우리들의 자녀들을 주의 깊게 살피자. 평소에 자녀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녀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부모의 품으로 돌아와서 쉴 수 있는 길을 평소에 닦아두자.
김현덕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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