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의 참상이 생중계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1977년도 겨울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로 공사장에서 죽은 17세의 예멘인 노무자 압둘라가 눈에 어른거린다.
사막의 우기는 겨울이다. 모래 폭풍이 불면서 장대비를 몰고 왔던 다음날 아침 폭풍우가 쓸고 간 하늘은 시퍼렇고 상쾌했다. 그날 저녁 무렵 토공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예멘 인부 서너 명이 허겁지겁 달려와 압둘라가 죽었다고 소리쳤다.
예멘인 노무자 천막숙소에 뛰어가 보니 천막 속의 흙바닥 위에 빗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데에 전선이 깔려 있고 전선이 시커멓게 타있었다. 압둘라는 철제 침대와 전기 곤로 사이에 엎어져 죽어 있었다. 감전 쇼크사였다.
압둘라는 아랍어로 ‘하느님의 종’ 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가졌으나 어린 나이에 국경을 넘어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공사장에서 막노동자로 날품을 팔고 있었다. 자기 이름도 아랍어로 쓰지 못해 봉급명세서에 낙서같이 서명하고는 씩 웃던 가냘픈 소년이었다.
노동청에서 조사를 나와서 감전사로 판단, 회사측이 2만 사우디 리얄의 보상금을 유족에게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예멘인 노무자 중에서 이 소년의 먼 친척인 이브라힘을 찾아내어, 정중한 조의문에다 노동청의 공문사본을 봉투에 넣어 주면서 송금은행 구좌번호와 합의서를 유가족에게 받아오도록 신신당부하고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이브라힘은 보름후 돌아와 인사를 했다.
“쌀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그는 압둘라의 어머니가 동네 학교 선생에게 대필하게 하였다는 편지 한장을 내 밀었다. 팔레스타인 통역인 이-싸(‘예수’라는 아랍어)에게 번역토록 했다.
<이브라힘을 통하여 압둘라가 귀 현장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소장님 이하 한국 노동자들이 친절하게 애써 주신데 대해 매우 감사합니다. 한편 압둘라의 사망보상금을 보내 주신다는 귀하의 편지 또한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아들이었던 압둘라는 이제 하느님(알라-)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 가서 하느님의 종이 되어 가장 행복한 상태에 있습니다. 알 함둘 릴라흐 (신의 은총에 감사). 그러므로 파라다이스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게된 행복한 아들에 대해 이승의 어미가 돈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천국에 간 압둘라를 부끄럽게 하는 일입니다. 알라흐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시다). 아들의 시신은 사막에 묻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브라힘에게 물어 보니, 압둘라의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오래고 홀어머니가 압둘라의 두 여동생을 키우며 번지도 없는 움막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가난한 나라,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글 한자도 배우지 못한 모자. 나의 눈에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곤 아무 것도 받지 못한 것 같은 그들이다. 그 보상금이라면 예멘에서는 누더기로 기운 움막을 벗어나 번듯한 집이라도 살 수 있을 텐데..
지극히 세속적인 계산밖에 못하는 유식한 내 자신이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가련하고 보잘 것 없이 보였을까?
압둘라, 알라 마아쿰 (하느님이 당신과 함께)
듀크 김/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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