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 뉴욕에서 한인 사회의 진보적 그룹이 퀸즈 페스티벌에서 한인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이 대규모 행사에는 주말에 30만 명이 다녀갔다. 행사가 끝난 후 “이것이 과연 한국 문화를 제대로 소개했는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에서는 이 행사에 분노를 표시했다. 포스터와 그림, 목판화 등에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꾸짖은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는 한국 노동자들이 고 임금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을 묘사한 그림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 대한 모욕이란 것이다. 이들은 주최측이 왜 다른 한국 문화를 소개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여기서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한국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점과 왜 그것이 그토록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인이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오면 ‘한국’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국에서는 결혼할 때 상대방의 출생지와 가족 관계, 교육 정도 등을 묻는다. 미국에서는 상대방 딸이 한국인과 결혼하느냐만이 관심 대상이다.
나는 한인 이민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가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안정’은 스몰 비즈니스와 연관된 개념이다. 이는 부자가 되거나 상류사회 진출과는 다르다. ‘안정’은 한인들이 ‘기회의 나라’ 미국을 이해하는 수단이다.
한인 이민자들은 스몰 비즈니스를 아메리컨 드림으로 가는 지름길로 생각하고 있다. 소위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가족 네트웍과 각종 단체 등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계급과 인종,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며 한국 문화는 미국의 정치, 경제, 역사적인 상황에 맞춰 선택적으로 변형된다.
‘안정’은 이민 1세들의 세계관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인 이민자의 문화는 역사 속에서 이뤄지며 정치적 색채가 곁들여 있고 창조적이다. 이민자들은 이 과정을 나무 접목과 연상시킨다.
왜 우리는 한국과 미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로잘도가 말했듯이 ‘멜팅 팟’이라는 개념은 문화적 박탈을 의미한다. 한인과 같은 소수계에게는 문화는 경제적 정치적 힘을 뜻한다. 따라서 문화는 스스로의 자긍심과 발언권을 얻기 위한 싸움에 쓰여 질 수 있는 무기이다.
한국과는 달리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는 한국의 전통은 끊임없이 문제 제기와 도전을 받는다. 한인 이민자들은 변하고 적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한인 문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한인 문화는 미국 내 다른 문화에 의해 크게 영향 받고 장차 이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한인 문화가 라티노나 흑인 문화의 일부 요소를 통합하고 또 반대의 경우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 때쯤 되면 한국 문화는 단지 한국에서 왔을 뿐이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자각하게 될지 모른다.
박계영/UCLA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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