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한국일보 오피니언 칼럼에 ‘법과 인간이 충돌한 불상사’라는 글이 실렸다. 그 글의 필자는 법의 척도로 잴 수 없는 남북 간의 관계를 법의 틀 안에서 다루려는 억지 끝에 생긴 희생자가 현대의 정몽헌 회장이라고 주장하며 지도자들은 법을 적용할 사건을 가려가며 선택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법에 대한 두 가지의 해석이 실려 있다. 첫째는 남북 간의 관계는 법을 초월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도자들의 역할은 어디에 법을 적용하고 적용치 않을 것인지를 가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되고 위험한 발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뿌리깊은 전근대적 계급사회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사를 규제하는 것은 법뿐만이 아니라 법을 초월하여 그 위에 존재하는 어떠한 규율이 또 있다는 견해는 맞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도덕은 개인적인 철학 또는 신앙에 기초되어 있고 개인의 삶 전체를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 자체를 입법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적어도 타인에게 해를 주지는 않고 살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명문화하고 그것을 법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 하게 하는 것은 법이고 빗자루를 들고 거리 청소를 스스로 하는 것은 도덕이다. 살인을 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은 법이고 타인을 미워하는 것 자체를 죄로 이해는 것은 도덕이다.
법은 모든 것에 좌충우돌 끼어 드는 소위 현대의 우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키기로 약속한 최소한의 행동 규범이다. 나쁜 법이 있을 수는 있으나 차별적인 법이 있을 수는 없다.
북한 송금에 대한 조사가 시작 되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치행위는 법의 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독서를 많이 하였다는 김 전대통령이 누구의 책을 읽고 그런 결론에 도달하였는지 궁금하다.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는 와중에 의회에 출석한 루이 16세는 “폐하, 폐하가 원하는 것은 불법입니다”라고 외치는 오를레앙 공작의 말에 “그것은 합법이오. 그 이유는 짐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요”라고 대답하였다. 5년 후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그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지도자들은 법을 적용할 사건을 가려가며 선택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도 통치행위가 법의 상위에 있다고 하는 생각의 확대 해석인 듯 한데 과연 거기에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고 한 말인지 의심스럽다.
비 시민권자들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법의 보호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가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불안스럽게 바라볼수 밖에 없는 우리 이민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더욱이 의아스러운 말이다. 지도자들은 법 위에 존재하고 법의 적용 대상은 지도자들에 의해서 선별되는 사회, 과연 진정으로 그러한 사회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는지 의심스럽다. 이라크가 무너진 지금 그런 사회는 북한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 이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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