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기도는 고행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교 신자였으니 눈을 뜨면 암송기도로 시작, 잠들 때까지 기도였다. 매일 의자도 없는 마루바닥에서 새벽미사 복사노릇을 하다보니 발등엔 못이 박혔다. 나에게 기도는 국민의 4대 의무 같은 거였다.
어른이 된 뒤에야 산 속 피정센터에서 신부님과 신자 부부들이 빙 둘러 손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기도란 사랑하는 이들의 대화 같은 거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미국에 와서 절실하게 기도했던 기억은 식품점을 할 때였다. 자정이 넘어 오는 전화는 대개가 가게에 알람이 울리니 가보라는 것이다. 30분 동안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저절로 매달리게 된다. 이번 만 봐주세요. 그러나 창문 유리도 깨지지 않고 별일 없어 돌아올 때면 당연히(?) 감사기도는 빼 먹는다.
입시 때는 간절한 기도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이 사람 들어주면 저 사람의 아들이 낙방되니 신은 현명하게도 그들 일에 관여하지 않으리라 본다. “우리 아이가 그 동안 준비한 것을 제대로 챙기게만 부탁한다” 정도면 몰라도.
“아이를 살려만 주시면 제 다리를 끊으셔도 됩니다” 서슴없는 사랑 앞에서는 신의 마음도 움직여지리라. 절벽 끝 나무 뿌리에 매달린 자에게 “그 손을 놓아라” 그러실 때 움켜진 손을 놓는 마음이 아니면 기도의 홍수시대에 신이 끄떡이나 하시겠는가.
뉴욕 롱아일랜드에 사는 마태(17)는 아버지 김성일(44)씨와 동생, 3부자 피아니스트다. 마태가 태어났을 때 오른 발이 접혀 걸을 수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부부는 신과 작은 약속을 했다. “아이의 오른 발로 피아노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 하나님 우리들의 음악을 세상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13개월만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모금공연을 계속해 오고 있다. 마태는 2년 전 9.11사태로 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릴 때 바로 옆 학교 건물에서 참사를 목격했다.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년은 이런 기도를 했다. “생명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그리고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았어요.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내가 하는 일이 생명을 살리고 위로하는 편에 서게 해주세요.”
하루하루 죽음의 낭떠러지로 달려가면서, 삶의 무력함에 허둥대다가 기도를 자기 구원을 위한 도구로만 알고 살아온 이에게 1학년 초등학생과 마태의 기도가 뒤통수를 친다.
한국 여류 수필가의 글 한 대목이다. 아들 대학 합격과 야구감독인 남편의 우승을 위해 부처님 앞에서 쉬지 않고 백팔배, 절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두 사람 사이를 오락가락 하느라 기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때 문득 부처님은 골고루 단비를 주시는데 어리석은 중생은 행여 빠질세라 작은 그릇을 다투어 내밀면서 “여기 주세요. 여기 주세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남편도 아들도 머리에서 사라졌다. 마음이 그득해서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지난달 LA에 사는 56세의 닥터 석이 샌프란시스코 마라톤을 완주하고 떠나면서 내게 전화했다. “22마일 지점에서 이 선생님 가정과 결혼한 아드님 부부를 위해 기도했어요.”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을 담보로 남을 위한 기도는 효력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생활화 된 기도’는 내게 세상 살아가는 참된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이재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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