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그 동안 돌보지 못한 울타리 나무를 가위로 잘라 주었다. 처음 이사 와서는 나무를 잘라 준다는 것이 미안해서 못 잘랐다. 저도 살라고 나왔는데, 살 권리가 있는데, 나무를 마냥 놓아두었더니 울타리 나무가 내 키 두 배만큼 자라서, 우리 집이 흉갓집처럼 음침한 것 같고, 달빛이 놀러 오려 해도 울타리 숲에 가리여 그늘이 지고 못 올 것 같고 아침에 햇빛이 방문 뜰 앞까지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아, 독한 마음을 먹고 울타리 나무를 잘랐다.
너무 많이 자라 이틀 동안 자르고 나서 병이 날 정도였다. 다정도 병이런가, 그냥 놔두어 키운 덕에 혼이 났다. 내 키만큼 자르고 나니 밖을 내다 볼 수 있고 지나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표정을 읽는 재미도 있다. 앞마당에 향나무가 두 그루 있는 것이 4년이 되었는데도, 자르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놓아두었다. 내 허리만큼 한 것이 두 팔을 벌리고 병풍을 두른 것같이 벌리고 있다. 오가다 쓰다듬어 주고 죽어간 나무 잎만 잘라주고 다듬어 주었다.
내가 이사오기 전 주인이 심었을 텐데 나이가 얼마가 되는지 모른다. 나보다 나이가 더 먹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 향나무에 가만히 코를 갔다 대면 은은히 우러나는 향이 있다. 마음을 서늘하게 해주고 눈을 감고 있으면 여인이 청포 잎으로 걸어오는 아름다운 모습을 음미하게 한다. 피곤하고 눈이 침침하면 향나무에 가만히 다가가서 잎새에 대고 숨을 쉬면 청량제가 되어 눈도 밟아지고 정신도 맑아진다.
오늘 아침에는 향나무가 키는 안 자라고 나무 줄기와 잎새가 옆으로 삐죽이 나와 우편함을 덮어 우체부가 우편함을 모르고 아무 데나 우편물을 던지고 가지 않을까 하여 불가불 향나무 가지를 자르기로 하였다. 평소에는 잎새에 코를 같다 대어야지 은은하게 울어 나던 향이 가지를 자르니, 향이 코를 찌른다. 그 향을 맡으면서 나도 저런 향이 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 그 사람이 있으면 분위기가 평안해지는 사람, 보기만 하여도 넉넉한 사람, 그런 향이 나는 사람이었으면 하였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다 지구 속 커다란 물 속에 같이 공존, 공유하고 산다는 것이다. 같은 공기, 같은 하늘, 같은 밤하늘 달빛도 공유하고, 별빛도 공유하고 있지 않는가. 향이 나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공존하여, 더불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우리들도 향나무처럼 자기 자리에서 남을 즐겁게 하고 산다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인간이 아프면 이 땅도 아프고 사람이 황폐하여 가면 자연도 황폐하여 간다는 것을 아는지, 물고기를 한번에 씨를 말리듯이 잡는 그런 행위가 가슴 아프다. 대량살생 무기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파 온다. 자연과 인간과 더불어 도와주고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이 땅에도 향이 나지 아니할까. 향나무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아름다운 향을 내놓을 수 있다면, 남의 것 탐내지 않는다면, 내 것 소중하게 가지고 그것으로 이웃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바보 이반’처럼 일하고 먹고산다면 향이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향이 나는 세상이 되어질 것이 아닌가.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성인을 말처럼, 있는 자리에서 좋은 냄새를 품어낼 수 있다면 잘살고 있는 삶이겠지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
김사빈/하와이 문학 동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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