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6월 아침(중순)은 말은 공기가 잔잔하게 바다물결끼리 부딪치며 조용히 속삭일 듯하다. 아이들은 비취로 가고 싶어지는 청량한 아침, 웨스트민스터에서 20여 년 살고 있는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은 저녁에 열릴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가리라고 마음먹는다.
바로 클라리사가 존재하기에 하루동안의 일상을 마음의 상태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묘사한‘델러웨이부인’은 버지니아 울프를 뛰어난 본격적인 작가로 인정하는 소설이 된 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6-7세 때부터 글쓰는데 재질을 나타나게 되고, 그것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정규적인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역사와 문학은 물론 그녀의 온 인생을 통하여 배움을 얻었다.
언니 마네사가 그림 그리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집에 남아 희랍어와 라틴어 가정교사 밑에서 한자 한자 익혀가며 호머와 소포클레스를 수업했다.
그러면서 작가가 되려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가 겪는 모든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고픈 충동을 느끼고, 그런 것이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버지니아가 22세 때 죽었다. 이복형제들과 언니, 오빠, 남동생이 있었다.
13세에 어머니가 죽고 나자, 이유 없이 기절하고 이상하게 행동했다.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1904년에는‘댈레웨이 부인’의 셉티머스 워렌 스머스처럼 창문으로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했으나, 창문이 땅에서 너무 낮아 실패했다.
버지니아는 개인 신상에 어려움을 겪을 때 일어나는 정신과 육체의 복잡한 반응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것은 광기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그 광기가 발작하여 지나간 다음에는 버지니아의 마음은 마치 폭풍이 지난 후 하늘이 깨끗해지듯 맑아지는 그런 것이 었다.
전위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블룸스베리 그룹’에서 만난 폴란드계의 유태인 리오나드 울프와 결혼했다. 그는 정치에 종사하는 동시에 신문, 잡지 기고가였다. 버지니아와 함께 호가스 인쇄소를 차렸다. 버지니아는 짧은 동안 10살 연상인 영국의 여류작가 바이타 색빌 웨스트와 동성애를 가졌다.
어렸을 때부터의 병으로 아이는 가지지 못했다. 1941년 세계 제 2차대전이 한창일 무렵, 큰 돌맹이를 털외투 주머니에 집어넣고 강으로 들어가 세상을 등졌다. 59세에 수영을 할 줄 아는데도 언니 마네사와 남편 레오나드 울프에게 편지를 써놓고 환청이 들리고 식사도 조금뿐, 이번에는 자신이 회복하기 힘들다는 어리석은 확신(?)을 가지고, 정신이 맑을 때 죽는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문학사상 제임스 조이스와 캐서린 맨스필드 등과 더불어 ‘의식의 흐름’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주목할 만한 여류작가 젊은 영문학도들이 한번쯤은 흉내내 보고 싶어하는 그녀의 문체. 영국에 여행가면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며 런던거리를 산책하고 싶다. 오! 버지니아 울프여.
안순희/하시엔다 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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