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시인
우리는 올해가 이민 100년이라고 흥분하면서 곳곳에서 자격도 없는 자가 저희들끼리 낄낄대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부추기면서 스스로 자격을 부여하며 갖가지 행사에 관여하고 있지만 과연 미국과도 으르렁거리던 멕시코 사람들이 우리 한민족보다 인격이나 문화나 문명이 뒤떨어져 있으며 경제에 대한 인식이 우리보다 뒤떨어져 우매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 줄까?
시간은 인간의 눈을 뜨게 하고 사회는 민중의 의식을 정립한다. 세상은 통치하는 자의 세상이 아니고 장사가 기업도 돈을 걷어 가는 주인의 기업만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삶을 이어가며 삶을 이어받는 만민의 세상이며 사회는 공존하고 동행해야 하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이득을 만민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지녀야 천하를 얻을 수 있는 통치자가 된다고 강태공이 말한 것처럼 기업이나 장사에서도 벌어들이는 그 이익을 종업원이나 노동자와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져야 기업인이 그 기업을 얻고 장사꾼이 그 장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생활의 기본권이 착취되고 생존권이 외면당하는 사회를 우리는 독재정권, 독재기업, 독재상업, 또는 독재의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사회라고 말할 수가 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시대가 이민을 오기 전 우리에게 여러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경험이 있다. 그 중에도 60년대와 70년대, 민중도 그러하지만 개인도 언제나 폭발을 참고 견디는 시대적인 폭발물이다.
한 나라의 독립된 생존과 인권의 재생을 위하여 이름 없는 많은 지사가 죽어갔듯이 그 때의 가난의 얼굴, 그 시대의 노동의 얼굴, 착취당하는 서민의 참 얼굴을 내보이고 생존의 합당한 회복을 위하여 처절하게 외치다가 마지막 항거라는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거두어간 아름다운 젊은이가 있었다.
그 이름은 잊혀질 수 없는 전태일. 불길에 타며 울부짖는 전태일의 통곡의 부탁에도 껄껄거리며 귀를 막던 그 때의 유신정권은 요정정치를 낳고 요정정치는 서민을 외면한 특권층의 호화판 사치와, 권력과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살인까지도 불사하는 정치가 만연했던 시대를 보면서 우리는 그때 무엇을 가슴속에서 시도했었을까?
여자 유학생 환영, 침식 제공, 월수 얼마 등등의 유난히 많은 유혹의 룸살롱은 우리에게 또다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에 반해서 서민과 노동자의 생활은 기업의 성장과는 반비례하여 날이 갈수록 참혹하여져 소위 말하는 ‘달동네’라고 하는 이름만 아름다운 빈민촌이 생겼고, 착취와 빈민의 원인을 찾고 호소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죽음까지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불행한 시대의 전태일, 우리는 그때의 불행한 시대를 기억하면서 다민족 사회에서 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이민사회는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싼 임금이나 착취 위에서 성공한들 우리는 안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에게 던질 파편 많은 폭탄을 그들에게 제조하도록 만들어주는 동기가 될 것이니 여기에서 한 발, 아니 두 발을 높여 딛고서서 노동자나 나아가서는 동족간, 혹은 타민족, 그리고 살고 있는 동네의 이웃과도 더 나눌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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