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김<회사원>
지난 여름 샌프란시스코의 그레이스(Grace Cathedral) 대성당을 구경하려 갔었다. 예배 시간에 맞추어 은은하면서도 울림있는 종소리가 울려펴졌고 그 까마득한 종탑을 올려다보며 회당 안으로 빨려들 듯 들어가 예배에 참석했다. 화려한 빛깔의 스테인 글라스를 통하여 들어온 빛은 회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깊은 음영을 만들어 그 곳의 모든 이들이 진지하고 성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교회의 벽은 여러 성자들의 행적이 묘사된 그림들로 가득했다. 모든 참석자들에게 풍성한 영적인 양식을 나누어 주는 예배가 아름다운 성가대와 오르간의 연주 속에서 마쳐졌다. 마침내 예배 시작 전 들어왔던, 그 어른 키의 세 배가 넘는 높고 무거운 정문이 열리고 문턱을 넘어서 교회를 나왔다.
컴컴한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따가운 여름햇살과 푸른 하늘, 그리고 상쾌한 공기까지 모두 새롭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관의 두 번째 계단을 다 내려오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굉음에 귀를 막아야 했다. 블루앤젤(Blue Angel)이라는 공군의 비행연습이었다. 앞모양이 바늘처럼 뾰족한 전투기는 푸른 하늘을 가르고 굉음을 내며 날아다녔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쪽을 보느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한 빌딩의 벽면을 모두 차지한 광고가 있었다. 영화 ‘Charlie’s Angel’의 한 장면으로 비키니를 입은 카메론 디아즈가 써핑보드를 타는 모습이었다.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고 백치스러운 웃음을 담은 여자가 그 아래의 빌딩과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려다 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교회의 계단을 내려와 건물의 측면으로 돌아서니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는 홈리스 둘이서 교회를 빠져나온 사람들의 자비을 호소하고 있었다.
교회의 문턱을 넘어서면 달라지는 세상이 그 날처럼 또렷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교회 안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찬송가로 가득한 데 교회 밖의 세상은 호전적인 전투기의 굉음으로 가득차고, 교회의 벽은 희생과 사랑을 실천한 성자들이 황금빛 후광을 빛내는 데 교회 밖의 벽은 벌거벗은 미녀의 섹시함을 자랑하는 자태가 있었다. 교회 안의 제단은 풍요로운 영혼의 양식을 나누고 있었는데 교회 밖은 영혼의 양식은 커녕 당장 주린 배을 채울 육체의 양식이 필요한 홈리스들이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의 문턱을 넘어갈 때, 달라지는 세상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예배가 시작될 때면 모두 경건한 얼굴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지만 정작 나올 때는 모두 긴장을 푼 모습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문턱을 넘으며 다시 폭력, 온갖 쾌락에의 유혹 그리고 소외된 이웃이 있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종교란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매일 우리의 에너지를 방전시키는 일상이란 기계의 배터리를 다시 채워주는 충전소이기도 한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