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육군 대장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병영 생활과 군의 각종 비리 이야기는 제대한 모든 남자의 즐거운 이야기 거리이다.
나는 1960 년대 초에 사병 생활을 했다. 훈련소 생활 첫날부터 구타가 시작되었고, 서울 부대 도착 신고식 때는 경상도 촌놈이 누구 빽으로 서울에 왔느냐 면서 두들겨 맞았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고참 밥 타오너라, 고참 빨래하라, 신발 닦아라, 고참 침대 정리하라는 것을 거절했다가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매번 요구할 때마다 거절했고 또 두들겨 맞았다. 하도 맞아서 엉덩이에는 핏자국이 몇 줄씩 박혔다. 엉덩이가 아파서 배를 깔고 잠을 자야했다.
그러다 하루는 군 검찰과 참모총장한테 편지를 썼다. 군대가 나태한 젊은이를 양성하는 곳이냐. 일제 시대도 아닌데 왜 구타하느냐. 농민은 한 톨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산비탈도 개간한다. 부대 내의 유휴지를 개간해서 군인 식탁에 반찬을 더 많이 만들도록 하자. 국가를 위한 생산적 군인이 되자는 편지를 보냈다.
그 후 감찰관이 방문했고 구타는 중단되었다. 몇 주 후에는 본부로부터 유휴지 개간을 담당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제안자이고 농대생이라서 적임자라는 것이었다. 군인들이 호박, 배추, 돼지 사육 같은 것을 시작했다. 당시 군인들은 배가 고팠다. 윗선에서 식량 도둑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영어 번역과 타자를 부탁 받았다. 많은 훈련 때문에 옷이 낡아서 바늘, 옷, 자동차, 건축 자재 등이 필요하다는 계획서였다.
어느 날 유명한 식당에 초대를 받았다. 당시에 미군에 보낼 계획서 작성에 수고한 몇 명의 장교와 사병한테 돈 다발이 배급되었다. 무슨 돈이라는 설명도 없었다. 상관이 주는 돈이라서 받는 것인 줄 알았다. 훗날에야 미군 감사를 통해서 돈 성격을 짐작했다.
당시에 높은 계급 자는 명문대 출신 군인 가정교사까지 두고 있었다. 외출증과 휴가증 숫자 조정이 급식에 관계된다는 것도 알았다. 수해 때는 대민 봉사 건설 장비와 자재들이 동원되지만 일부 장비는 개인 돈벌이용 후생사업에 동원된다. 담당 장교는 제대와 동시에 건설회사 사장이 되었다.
사관학교 출신은 청렴할 줄 알았는데 훗날 오염이 되는 것도 보았다. 거창 고향 후배는 사관학교 출신이었는데, 대령 진급하려면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란다. 그 돈이 없어서 제대를 했다는 사람도 있다. 군대 휘발유 팔고, 약품, 쌀 팔아서 회식비 만든 이야기는 보통이다.
군대서 거짓 보고서 작성과 뇌물 상납하는 것을 배운 실력으로 사회에 진출한다. 그러니 한국 사회의 부정 부패는 군에서부터 정화되어야 된다.
철없는 젊은이가 부정한 일을 처음 배우는 곳이 군대였다. 물론 모든 군인이 부정과 비리를 경험하지는 안겠지만 부정 부패는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번 신 대장 횡령 사건이 투서에 의한 하극상, 군 파벌이란 말도 있다. 신 대장 개인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이번 기회에 군의 부정 부패가 정화되어 법을 준수하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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