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한인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 테러범들에게 참수 당했다. 그것도 만인공로할 처참한 방법으로 살해됐다. 범인들에게 그보다 10배 잔인한 방법으로 되 갚아 줘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지만 냉정하게 한번 이번 사태의 원인을 생각해 보자.
과연 이라크 인들이 이번 김선일씨의 살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김선일씨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또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울분을 삭이고 또 고인의 넋을 위로할 것인가?
우선 이번 이라크 인들이 김선일씨를 살해한 목적은 분명하다. 정치인들보다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살해방법의 잔혹성이나, 외교 협상의 여지가 없을 만큼 신속하게 참수를 단행했다는 점등은 다분히 일반인들을 상대로한 충격(공포)요법을 노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고 김선일씨의 죽음을 통하여 제 2, 제 3의 김선일 사태를 예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라크 파병의 무의미함,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무모함등을 선명히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 테러범들의 의도와는 달리 22일 김선일씨의 참수 소식이 전해진 한국에서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하던 자들의 21%이상이 추가파병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참혹한 살해방법에 대한 분노감, 그 역효과 때문이겠지만 피는 피를 부르고,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 다는 만고의 진리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이번에 한국인 김선일씨를 향해 저지른 행위는 그들을 평화의 적으로 오히려 더욱 지탄받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라크인들이 요사히 자행하고 있는 잔혹한 행위들은 그들의 이성이 무차별의 극을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과연 이러한 무분별한 행동으로 어떻게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한심하기조차 하지만, 이라크 사태를 바라보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국이 이라크에 저지른 전쟁행위가 과연 정당했는가하는 이라크 쪽의 입장이다.
이라크 인들이 비록 911사태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 전 지구촌의 질타를 면치 못하고 있다해도 2차대전 중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향하여 저질렀던 만행에 비하면 보다 인간적이었다. 한 단체, 아니 온 민족(독일)이 들고일어나 어떻게 그처럼 야만적인 살인 행위를 동조하고,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은 서구 지성의 야수성마저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선일씨의 무죄한 죽음으로 서구인(한인)들의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이 아무리 표면적으로 비 이성적이고 또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무차별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해도 서구가 종교(기독교)·문화적인 측면에서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이질적인 적대감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중동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미국이 이번 이라크에 대한 침공, 국민이 원치 않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정치적인 이익 때문이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그것이 또 다른 피를 부르는 감정싸움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의 죽음 통하여 생명의 고귀함, 전쟁의 무서움, 생명경시 풍조가 부르는 엄청난 결과를 예측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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