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 나카타니 미키와 두번째 만남 호흡 척척
“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선배는 이미 내 상대가 안되니까….”
설경구는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며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낮은 톤으로 말했다. 차분하지만 강렬한 의지가 깃든 그의 목소리에 상대방이 강한 두려움을 느낀다.
6일 오후. 30도를 웃도는 높은 기온과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살이 뜨거운 일본 주고쿠 지방의 타케하라시. 인구 3만을 조금 넘는 이 도시에는 30∼40년대 일본의 거리 모습을 보존한 ‘역사보전지구’가 있다. 이 역사보존지구내 우리의 객주집과 같은 ‘마츠자카 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합작 영화 ‘역도산’(감독 송해성·제작 싸이더스)이 한창 촬영 중이었다.
이날 촬영은 스모 도장 연습생인 김신락(역도산의 본명·설경구 분)이 자신을 괴롭히던 일본인 선배를 힘으로 제압하고 다시는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강하게 압박하는 장면이다. 설경구는 ‘공공의 적’ ‘실미도’ 등 작품에서 이처럼 강한 힘이 느껴지는 연기를 자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촬영에서는 대사가 모두 일본어였다.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로 상대역과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야한다. 아무리 연기파라고 소문난 설경구이지만 외국어 대사의 연기가 과연 매끄럽게 될까. 하지만 모니터를 지켜보던 송해성 감독은 흡족한 표정을 나타냈다. “좋았어요. OK,마무리하자.”
촬영이 끝난 후 송해성 감독은 설경구의 일본어 연기에 대해 “그냥 일본어를 무조건 외운 것이 아니다. 상대역인 일본 배우들은 (설)경구의 대사를 듣고 ‘감정전달이 정확하다’고 감탄한다”고 칭찬했다.
송감독은 “심지어 어떤 배우는 그의 일본어 연기를 두고 ‘시골 사투리가 느껴지는 일본어’라고 말한다”며 웃으며 덧붙였다. 제작진에 따르면 설경구는 ‘역도산’에 캐스팅된 이후 5개월 동안 일본어 대사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고 한다.
다음 날인 7일에는 타케하라시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미로쿠노사토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이곳에는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옛 일본 거리 오픈세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자토이치’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이날 촬영은 역도산이 연인 아야를 처음 만나는 장면. 두 사람은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치는데 마침 공습경보가 울리자,함께 방공호로 대피를 한다.
8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고 마치 40년대 기록영화에서 나온듯한 고풍스런 자동차와 인력거가 거리를 달렸다. 아야역의 나카타니 미키는 영화 ‘링’에서 주연을 맡은 일본의 톱스타이다. 그녀는 설경구와 2000년 NHK 드라마 ‘쇼토쿠 태자’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다. 이미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 그런지 이날 두 사람은 미묘하게 발전하는 두 남녀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손발이 척척 맞았다.
바람처럼 살다 간 풍운아 ‘역도산’의 삶을 재현하는 촬영 현장은 한국과 일본의 배우,제작진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뿜어내는 열기로 7월 햇살보다 뜨거웠다.
김재범 oldfield@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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