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민들레의 콩쥐팥쥐 공연 10년의 대단원의 막은 내 고향 통영에서 그렇게 내렸다.
한국의 남단 한려수도 자락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통영시민문화회관 무대에서 미국의 2세들이 공연을 펼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이야말로 색다른 이벤트였다.
공연 날인 7월 2일을 전후하여 TV 뉴스로 시시각각 들려오는 태풍 민들레의 접근소식! 작년 이맘때 태풍 매미호로 쑥대밭이 되었던 통영! 그래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상예보는 통영 사람에게나 우리에게 달갑잖은 소식이었다. 태풍으로 모처럼의 우리의 공연과 관광이 망가지나 싶은 생각이 나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내가 우겨서 시작한 통영공연! 그리고 우연하게도 태풍의 이름이 우리 극단의 이름과 같다는 점에서 우리가 태풍 민들레를 몰고 왔다는 원성마저 들을까 봐 나의 심기는 편치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작년의 하와이 공연으로 콩쥐팥쥐 공연의 10년의 대단원 막을 내렸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마저 내 가슴에 차 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공연의 막이 올라가는 날 새벽, 나는 호텔의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 보았다. 창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풍이 불어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개막 한 시간을 앞둔 시각에 이미 관객의 행렬이 극장 쪽을 향하여 이어지는 것을 나는 확신했다. 하와이에서처럼! 그리고 밤 7시의 야간공연에도 내 고향 통영 사람들은 우리 공연을 보러 밀려 와 주었다. 그리고 2,200명의 그들은 우리 공연에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 박수소리는 어쩜 나의 금의환향을 축하해 주는 소리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태풍 민들레도 고향을 그리는 나의 간절한 향수 앞에 고개를 숙였는지 모른다.
공연 다음날의 한려수도 일주 유람선 관광에서도 바다는 잔잔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의 거제도 일주관광도 태풍의 방해 없이 끝났다. 나는 4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86명의 단원들에게 지금까지 가슴 조렸던 나의 심정을 털어놓듯이, 태풍 민들레가 한국 땅을 향하여 달려오다가 미국 민들레의 기세에 꺾여 그만 중도에 소멸되고 말았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극단의 이름과 같은 태풍 민들레가 도중에서 소멸된 것은 그의 형제 같은 민들레 공연을 훼방놓지 않으려는 우애 때문에 중도에 비껴갔다고. 나의 이런 어린애 같은 농담에도 모두가 활짝 웃어주고 있었다.
어쨌든 내 고향 통영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7월 5일 잠실의 올림픽경기장 앞에서 제 각기의 친척집으로 흩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단원들과 헤어져 다시 통영으로 내려와 호텔방에 웅크리고 앉아 이렇게 7월분 내 칼럼의 글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나를 희곡작가로 만들어 준 내 고향의 선배 극작가 유치진 선생의 희곡 통곡의 연출을 꼭 맡아 달라는 진여장 통영시장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통영시대 5개 남녀 고등학생을 선발하여 10월 2, 3일에 공연할 제24회 통영예술제 공연을 위해 나는 내 고향 바다에서 이 한 여름을 날 것이다.
내 호텔 방 창 넘어 저멀리에 쳐다보이는 흰 화강암 벽돌 건물! 내 나이 27살 때 국어선생질을 그만두고 떠나던 그 날 눈물 흘리며 잘 가라고 손짓해 주던 그 여학생들의 모습이 75살이 되어 돌아온 내 눈에 반딧불같이 일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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