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선조 얼 서린 한인교회 재매입 운동도 활발
중가주 최대일간지 ‘프레즈노 비’ 대서특필
중가주 리들리 경상남도 통영시를 묶는 유대관계는 그 어느 자매도시들보다 깊어지고 있다. 미주이민 한인선조들의 발자취와 독립운동의 기상이 서려있는 리들리교회를 다시 매입하려는 한인들의 열기도 뜨겁다.
중가주 최대 일간지 ‘프레즈노 비(The Fresno Bee)’가 지난 8일자 로컬&스테이트 섹션에서 1면과 2면에 걸쳐 ‘역사 속의 풀무질’이란 제목으로 리들리-통영의 유대관계와 리들리교회 재매입운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다음은 간추린 내용.
두 도시의 관계는 거의 한세기 전에 시작됐다. 자매결연으로 문화교류와 학생교류는 물론 경제교류로 이뤄질 것이다. 조셉 로즈 리들리시장은 초기 한인들과 이 지역의 역사적 유대관계로 볼 때 이(자매결연)는 의미심장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시절(1900년대 초반) 자주 리들리에 들러 통영 출신 갑부 해리 김(1977년 작고)씨 소유의 호텔에 묵으며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차만재 프레즈노주립대 교수(정치학)는 1909년부터 1945년 사이 (미주 한인사회에서 걷힌) 독립자금의 3분의1가량이 리들리와 다이뉴바에서 모아졌다고 말한다.
이 지역 최초의 한인건물은 1912년에 세워진 다이뉴바의 ‘한인제일장로교회’로 2000년 시 당국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됐다. 게다가 ‘통영 김씨’의 부지 기부로 1935년에 건립된 리들리 한인교회는 한인사회의 사회적 종교적 허브(중심지)였으나 곡절끝에 히스패닉계 주민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차 교수를 비롯한 한인들은 3년 전 역사적 유산을 되찾아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며 3년 전 리들리 한인교회 재매입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기금모금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상당한 진전도 있다.
지난 1월, 캘리포니아 주의회는102명의 용감한 남녀 한국인들이 거대한 태평양을 넘어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려 매년 1월13일을 코리안-아메리칸 데이로 선포했다. 1903년부터 1905년 사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이민을 온 한인은 약7,200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미 본토로 이동, 농촌 일자리를 찾아 리들리와 다이뉴바에 정착했다.
1930년까지 300명 내지 350명의 한인들이 두 도시에 살았으며 당시 리들리시민이 2,589명(센서스 통계)이었던 점에 비춰 ‘상당한 숫자’라는 게 차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리들리 공동묘지에는 190기, 다이뉴바의 스미스마운틴 공동묘지에는 53기의 한인 묘가 있다.
차 교수 등 한인사회 대표들은 로즈 시장 일행이 다음달 중순 자매결연 조인식을 위해 통영을 방문하는 길에 자비부담으로 동행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통영시 대표단이 지난 4월 리들리시를 방문한 바 있다.
한편 차 교수는 리들리 한인교회 재매입 기금으로 지난해 12월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1만달러, 올해 3월 LA 동양선교교회로부터 1만달러, 프레즈노 및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한인들로부터 1만달러 등 3만여달러가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 교회 매입 및 수리 비용은 10만여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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