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 논란속 우리가 알던 명성황후 사진
8일 명성황후 시해사건 109돌]
■ 이돈수씨, 시해 1년전 美잡지 첫 입수 공개
사진 주인공 신분 구체적 명기 학계 황후사진 없음을 입증
“명성황후(明成皇后ㆍ1851~1895)의 생전 모습을 기록한 사진이다, 아니다”로 논쟁이 계속돼온‘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이 왕후를 보좌한 상궁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자료가 처음 발굴됐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109주년(8일)을 하루 앞둔 7일 미술사학자 이돈수(38)씨가 시해 1년 전 명성왕후에 대한 특집기사‘조선의 왕비’를 게재한 미국 잡지‘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1894년 11월호를 공개했다.
특집 기사는 미국인 여행전문 저널리스트 프랭크 G. 카펜터(1955~1924)가 그 해 여름 고종과 세자(순종)를 인터뷰해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썼는데, 표지에 그동안 학계의 해석이 엇갈린‘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 사진을 싣고 ‘조선 왕비의 상궁(The Queen Of Korea’s Chief Lady In Waiting)’이라고 신분을 명확히 명기했다.
명성황후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미국 잡지 ‘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 1894년 11월호 표지.
이번에 발굴된 잡지는 지금까지 확인된 이 사진의 출처 가운데 시기상으로 가장 이를 뿐만 아니라, 이처럼 사진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가장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있어 그 동안의 명성황후 추정 논쟁을 종결지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학계는 같은 사진을 카를로 로제티의‘꼬레아 꼬레아니’(1904년), 언더우드 여사의 ‘조선생활기’(1905년), 호머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에서 확인했으나,‘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정장한 조선 여인’ 이라고만 설명돼 있어 사진의 주인공이 명성황후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왔다.
‘은둔의 왕국 궁궐의 막후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특집 기사는 또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1년 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8 페이지에 걸쳐 실린 ‘조선의 왕비’에서 카펜터는 명성황후를 직접 만나본 미국인 부인들로부터 들은 정보 등을 취합해 외모, 성격, 궁중 생활상, 고종과의 관계, 그리고 국내ㆍ외 정세 속에서 왕후의 권력관계 등을 상세히 서술했다. 서구언론이 명성황후를 다룬 글이나 지금까지 확인한 명성황후 관련사진 대부분은 시해사건이 발생한 뒤의 것이었다.
사진논쟁과 관련‘조선궁녀론’을 주장해온 건국대 신복룡(申福龍) 교수는“서구 언론이 생전에 명성황후를 다룬 것은 드물다”며 “이 자료는 명성황후의 사진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소중한 증거”라고 말했다.
한편 2001년 같은 사진에 ‘일본 과격분자에 의해 살해된 한국 황후’라는 설명을 단 프랑스 잡지‘르 뚜르 뒤 몽드’(1904년)를 공개하면서 ‘명성황후론’을 주장해온 서울대 이태진(李泰鎭) 교수는“1894년7월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시도한 경복궁 점령작전 실패한 직후 이에 대한 서양인들이 비난 분위기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는 일본의 선전전략으로 이런 특집기사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하면서도“이 특집기사가 서구 언론에 명성황후가 소개된 것 중에서 시기상으로 이르기 때문에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