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광렬 박사는 할리웃 장로병원이 한인사회와 타민족, 주류사회, 한국을 이어주는 좋은 다리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효섭 기자>
할리웃 병원 인수한 차광렬 차병원 포천중문의대 학원장
지난 10일 ‘퀸 오브 에인절스 할리웃 장로병원’을 인수한 한국 ‘차병원 그룹’ 차광렬(52) 박사. 세계적인 생식 및 불임 분야 전문의로 이번 인수협상을 지휘한 차 박사는 “한인과 한국 젊은이들에게 우리도 미 주류사회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데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한국 자본이 인수한 미국내 첫 종합병원을 탄생시킨 그의 이름 앞에는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를 이끌면서 한국 민간병원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으며 세계에서 처음 미성숙 난자의 체외 배양에 의한 임신 분만을 성공한 것도 차 박사다. 이 것뿐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정자직접 주입법에 의한 임신분만을 가능케 했다.
2,000만달러 투입 최고급 종합병원으로 개조
산부인과·줄기세포·대체의학 분야 집중 육성
영어 잘 못하는 1세에도 최상의 서비스 제공
학자로서의 명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차 박사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0년 10월에는 미 불임학회의 최우수 영상논문상을 수상, 학문적 깊이도 인정받았다.
그는 “한국 의료시장 개방에 맞서 불임 치료와 생식·내분비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온 한국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는 사실도 무척 기쁘다”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차병원의 세계화라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7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차 박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를 거쳐 산부인과 전문의를 획득했다. 1984년 부친 차경섭 박사가 설립한 차병원에 합류한 그는 USC에 연구원으로 방문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차병원에서 근무했다.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소장, 차병원 경영 책임자를 거쳐 1997년 포천 중문의과대학을 설립한 뒤 초대총장을 역임했다. 학교 설립 이유에 대해 차 박사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의대를 설립했고, 우수한 학생들이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와 사업가, 교육자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현재 일년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생활한다. 지난 1999년 컬럼비아 대학과 차병원이 함께 뉴욕에 설립한 CC 불임연구소의 책임을 맡아 컬럼비아대 교환교수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병원의 미국 의료시장 진출은 5년 전 CC 불임연구소가 세워지면서 시작됐다. 차 박사는 “미국 체류시간이 늘면서 한인 1세들이 언어 때문에 병원 이용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미주 한인이 100만명을 넘는다고 하면서 종합병원 하나 없어 한인 노인들이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에 대한 그의 이런 관심이 종합병원이라는 결실을 맺는데는 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는 “오랜 준비를 거쳐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병원인수 활동을 펼쳐 왔다”며 “이번 인수에 한인사회가 LA 지역에서 쌓아온 좋은 평판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만큼 한인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원은 할리웃 장로병원을 ‘시더스 사이나이’ 같은 최고급 종합병원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우선 테넷 그룹이 할리웃 장로병원을 인수한 뒤 붙인 ‘퀸 오브 에인절스’라는 명칭을 삭제해, 테넷 그룹과의 차별화를 꾀할 방침이다.
차 박사는 “테넷 그룹이 인수하기 전 할리웃 장로병원은 시더스 사이나이와 어깨를 겨루는 좋은 병원이었다”며 “2,000만달러 이상을 투입, 시설을 현대화하고 우수 의료진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차병원은 한국 차병원과 할리웃 장로병원의 장점을 합쳐 심장센터, 암센터, 산부인과, 줄기세포 연구소, 대체의학 분야를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한국 불법자금의 미국 유입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차병원측 투자액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금을 한국 현대증권이 조성한 사모펀드를 통해 조달하기 때문에 불투명한 자금의 유입은 불가능하다. 국민병원 개념을 도입해 내년부터는 한인 투자자도 모집할 것”이라는 게 차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현대 중공업 같은 기관투자자가 이미 대규모 투자 의사를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업계가 어려운 시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에 대해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신념을 표시했다. 그는 “증권계에는 바닥에 사라는 격언이 있다. 미국 병원업계는 지금 바닥을 치고 있다”며 “내년에 할리웃 장로병원이 좋은 성과를 낸다면 적극적으로 병원 매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내진 시설이 안 된 병원을 너무 비싸게 샀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응급실 건물을 제외한 건물은 모두 1980년 이후에 세워져 내진 시설이 완벽하다”고 해명한 뒤 “구체적 가격을 밝힐 수는 없지만 테넷그룹이 병원을 반드시 팔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좋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차병원은 한국 포천 중문의대와 할리웃 장로병원의 교류를 활성화 할 방침이다.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차 박사는 “돈만 생각한다면 이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며 “솔직히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데 따른 어려움과 부담이 작지 않지만 젊은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인 젊은이에게도 큰 도전이 됐을 것으로 믿는다”며 “앞으로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해 세계에 한인의 우수성을 떨치겠다”고 밝혔다.
<이의헌 기자>
■ 경영 철학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언젠가 알아준다”
차 박사의 공식 직함은 차병원 그룹 포천 중문의과대학 학원장. 부친 차경섭 박사를 도와 차병원을 20개 이상의 병원과 의과대학, 연구소 등을 갖춘 초대형 의료그룹으로 성장시킨 그는 세계적 명의인 동시에 성공한 사업가다.
사업가로서 차 박사는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세상이 진실을 알아준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는 “2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면서 온갖 모함, 협박, 어려움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앞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오늘의 차병원이 가능했다”며 “한인사회도 상대방을 공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할 때 보다 성숙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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