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단가 높아져 타운업체도 ‘타격’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달러당 1,150원대였던 것이 심리적 저지선이라던 1,100원이 무너진 것은 물론 18일 1,065.4원까지 하락했다가 19일 당국의 개입으로 다소 상승한 1,068.7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올 들어 무려 11.6%의 하락을 보인 것이다. 환율 하락의 배경, 미국 및 타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앞으로의 전망 등을 짚어본다.
미 재정·무역적자 줄이려 ‘약 달러 정책’
마켓·서점·의류·잡화등 한인 비즈니스
중국·한국등서 들여오는 품목 많아 부담
미 기업 수출에는 도움… 여행업계도 반겨
■환율 하락의 배경
전문가들은 환율이 급락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미 경제의 불안을 꼽고 있다. 미 정부가 ‘쌍둥이 적자’로 불리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달러 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어 환율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경상적자를 부추기는 일본과 중국, 한국, 대만 등 아시아 4개국에 대한 압박차원에서 달러약세 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여기에다 한국 금융당국의 환율 방어 의지가 소극적이라는 점도 환율 하락을 묵인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도 이달초 개입 의사만 밝혔을 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업체들이 앞다퉈 달러 내다팔기에 나서면서 매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 경제에 주는 타격
약한 달러는 앞으로 미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국채의 수익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기업들의 금융 비용과 모기지 금리도 덩달아 상승할 수 있다. 또한 약한 달러는 자연 의류, 전자제품 등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들어오는 상품 가격의 인상을 불러온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가격이 올라간 외국제품을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구입한다면 자칫 미국의 무역적자를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더욱이 해외에서 원자재와 부품들을 구입해 오는 미 기업들은 원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 판매가를 올리기는 쉽지 않아 수익이 줄어들거나 채용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미 경제에 주는 도움
반면 달러 약세가 미 경제에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다.
미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프록터 & 갬블사는 최근의 환율 변동 덕으로 지난 3·4분기에 3%의 매출 증가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이 기간중 무려 3억6,500만달러를 더 벌여들였다. 차와 같은 완제품보다는 철강과 같은 원자재를 파는 생산업체에 더 유리하긴 하지만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도 약 달러를 반기고 있다.
미 여행업계도 관광 산업 약진에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 여행객들이 강해진 자국화를 사용하기 위해 미국에 더 많이 건너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해외여행 경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어 가급적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성향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한인타운에 미치는 영향
많은 한인 업체들이 약달러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마켓, 서점, 가정용품점, 유럽명품 판매점 등 많은 상품을 한국, 중국, 유럽 등에서 사오는 업체들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풀리지 않아 답답한 시점에서 약달러의 이중고까지 겪게 됐다며 울상이다.
이들은 “연말 샤핑시즌 대목을 앞두고 일단은 가격 인상을 감수하고 있지만 환율 하락이 계속 된다면 늦어도 내년 초에는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투자 금융상품인 금호 VIP 멤버십을 판매하는 금호개발은 환율 하락이 시작된 지난달부터 계좌 오픈이 전월대비 절반 가까이 급감하는 한파를 겪고 있다. 상황이 나아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아 대체상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서 매일 서적을 공수해오는 타운 서점들도 가격 인상을 심각히 고려중이다. 환율은 물론 항공 운임마저 지난 10월 이후 3-5% 올라 우려를 더하고 있다.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들이 생필품이 아닌 서적에 대해선 구입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의 심각한 고민이다.
중국산을 많이 수입하는 다운타운의 의류 및 잡화 업체들도 약달러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의류업체들은 내년도 섬유쿼타 해제로 교역량이 급증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수입 단가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여 달러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타운 부동산업계는 한국의 정치, 경제적 불안정으로 늘어나고 있는 한국인들의 미 부동산 투자가 원화 강세 덕분에 더욱 촉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숙박업소 매입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한 한인은 “매물 가격이 크게 올라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원화의 가치가 크게 절상돼 있는 지금이 좋은 투자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 상황과 전망
달러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9일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커 향후 달러 매각이 예상되며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엔 한계가 있다”면서 약달러지지 의견을 밝히자 더욱 폭락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이날 독일에서 열린 유럽 금융인 회의 연설을 통해 “환율을 예측하는 것은 동전 던지기처럼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일정 시점에는 분명히 달러 매각과 가치 하락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발언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날 뉴욕시장에서 달러 가치는 6개 주요 통화에 대해 지난 1995년 이래 최저로 떨어졌다. 오전 9시42분 현재 달러는 엔화에 대해 1달러 당 103.29엔으로 2000년 4월 이후 4년반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행정부가 강한 달러를 선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약한 달러를 원하는 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환율이 계속 떨어지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시장 개입에 한계가 있고 당국의 의지가 달러 매도를 멈추는 데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여서 원/달러 환율은 앞으로 더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장섭 기자>peter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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