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장동마을 ‘금연촌’]
50~60년 골초 80代 할아버지까지 작년 1월 주민 98명 완전 금연 성공
담배 문 촌로 모습 이젠 ‘추억의 풍경’ 감기·기관지염 없는 건강마을 거듭나
장동마을 주민들이 31일 마을 경로당 앞에서 금연마을 만들기 성공을 자축하면서 손을 번쩍 들어 “건강 만세”를 외치고 있다. 보성군 제공
담배가 어떻게 생겼소?
31일 오후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장동마을. 마을 입구에서 논에 물대기를 하던 공동수(67) 이장은 정말 마을 사람들 한 분도 담배를 피우지 않느냐고 묻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담배가 어떻게 생겼냐고 웃으며 되받는다. 공 이장은 어디 우리 동네 사람 중에 입에 담배 물고 있는 사람 본 적이 있느냐며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담배 생각이 날 때 소줏잔을 기울였으면 기울였지 담배는 절대 안 피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체 46가구 98명이 살고 있는 장동마을은 ‘금연촌’으로 통한다. 요즘은 농번기. 옛날 같으면 건강에 나쁜 줄 알면서도 힘든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짬이 나면 으레 담배를 꺼내 물던 촌로의 모습은 마을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장동마을에서 담배 연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마을회관이 방 2개짜리 경로당으로 바뀐 1996년 3월부터. 추수를 마친 농한기에 할 일이 마땅치 않던 할아버지들이 경로당에 모여 허구헌날 줄담배를 피워대자, 참다 못한 할머니들이 들고 일어섰다. 당시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을 따지며 방을 따로 쓰던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방으로 매캐한 담배 연기가 그대로 새어 들어오자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담배를 피우려면 나가서 피우시오! 할머니들의 빈축을 사며 경로당 문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담배를 끊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렇게 할머니들의 등쌀에 못 이겨 시작된 ‘담배 없는 마을 만들기’는 지난해 1월 그 결실을 맺었다. 주위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 마을의 ‘마지막 흡연자’ 정모(85) 할아버지가 50년 넘게 피워온 담배를 끊고 금연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마을 최고령자인 이수업(90) 할아버지는 작년에 정씨가 담배를 끊었다고 해 찾아가서 ‘정말 잘했다’고 크게 칭찬을 해줬다며 주위에서 싫다고 하는데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할 짓 아닌 것 같아 나도 3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고 말했다.
장동마을이 금연마을로 자리잡으면서 몰라보게 달라진 것은 주민들의 건강.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감기 환자들이 속출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기관지염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줄어들어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기관지염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난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 이장은 금연의 효과는 그대로 건강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마을 입구에 설치된 전라남도 지정 ‘환경친화마을’ 간판을 내리고 ‘건강을 지키는 금연마을’이라는 새 입간판을 세우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보성=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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