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양국의 섬유무역 갈등이 마침내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할 것인가. 중국이 수출관세 부과 철회방침을 밝힌 가운데 31일 중국 상하이의 의류상점 앞을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미 “일자리 1만개 감소, 위협아닌 피해”
중 “더이상 밀리면 끝장, 통상전쟁 불사”
경제전쟁 피하자” 공통인식 재협상 여지
섬유쿼타 부활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경제분쟁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30일 올 초부터 수출관세를 부과한 148개 섬유 및 의류 품목 중 81개 제품의 관세를 6월1일자로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해당품목에는 남녀 면바지, 남성정장 등 주요수출품목을 포함, 지난 20일 중국 정부가 수출관세인상 대상 품목으로 발표한 74개 품목도 포함돼 있어 당초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관세인상조치는 전면 취소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및 유럽연합(EU)의 고강도 압박에 다소 유화책을 보였던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정면 돌파 대응을 택함으로써 섬유제품 수출을 둘러싼 마찰이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첨예화된 미·중 양국 갈등의 배경과 전망, 미국 섬유업계의 현실을 짚어본다.
중국 베이징의 한 속옷전문점에서 점원이 진열된 상품을 정돈하고 있다.
■배경과 분석
양국의 마찰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미 상무부가 지난 달 7개 중국산 섬유 및 의류 카테고리에 대해 수입쿼타 부활의지를 표명하면서부터다.
상무부는 올 초 WTO에 의해 쿼타가 해제된 이후 미 섬유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세이프가드 발동에 대해 올 상반기만 해도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으나 지난 4월 “미국에 대한 중국산 수입품의 영향이 위협을 넘어 피해 수준으로 드러났다”며 세이프가드 지지입장으로 선회했고, 4월 말 미 항소법원이 중국산 섬유·의류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규제 명령을 해제하면서 쿼타재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상무부는 이후 강력한 수입쿼타 부과방침을 밝힌 데 이어 지난 23, 27일 쿼타를 부활하는 등 전격적이고 신속한 조치를 취 했다.
중국은 이와 관련, 지난 20일 74개 품목에 대해 수출관세 인상조치를 밝히는 등 유화책으로 미국과 EU를 달래려했으나 미국은 “불충분하다”며 6개월 내에 최소 10% 이상 위안화 가치를 절상할 것을 요구하는 등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브라질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긴급 수입제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중국에 대한 압박에 가세, 미국과 EU에 힘을 보탰다. 중국 상무부는 이에 대해 지난달 말부터 “더 이상 압박하면 통상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고, 마침내 수출관세 취소라는 극단의 조치를 택했다.
중국의 이 같은 전술 이면에는 ‘더 이상 밀릴 경우 위안화 문제도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섬유류 수출관세를 자진 인상하는 등 유화책을 취하던 것과는 상반된 태도로, 섬유 분쟁과 관련해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쿼타를 부활하는 등 강경입장을 유지한 데 대한 보복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미국 및 EU와의 갈등이 ‘국지전’을 넘어 ‘총력전’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 섬유업계의 현실
쿼타마저 사라진 중국산 섬유 및 의류의 광범위한 침투로 미 의류 산업은 올 상반기 직격탄을 맞았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중국서 수입한 섬유 및 의류는 지난해 1월 7억100만달러에 비해 546%가 급증했다. 주요수입품목 중 하나인 중국산 면 니트셔츠는 쿼타가 있던 지난해 1월의 경우 94만1,000장이 수입됐으나 올 1월에는 무려 1,836%가 증가한 1,820만장에 달했으며, 면 니트 바지 수입량도 1년 사이에 1,332% 증가했다.
미 의류·직물 산업의 일자리도 지난 1월 1만2,200개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미 대형 의류 및 관련업체들이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집을 줄인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무역적자도 빠르게 불어났다. 지난 1월 중국과의 무역에서 153억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을 비롯, 전체 무역 수지에서 583억달러 적자를 봤다. 이는 한 달 전 적자 557억달러보다 4.5% 상승한 것으로 사상 최고였던 지난해 11월 594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적자폭이다.
■전망
예상 밖 초강경 전술을 택한 중국에 대해 미국과 EU는 강력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번 주 예정된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부 장관과 롭 포트먼 무역대표부 대표의 방중 때 위안화 절상와 더불어 섬유 문제를 집중 거론할 계획이다.
구티에레즈 장관은 지난 주말 “미국은 중국 섬유제품 수입제한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강경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미 의회 역시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을 경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두 진영의 대립이 극단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 상무부의 보시라이 부장은 “중국은 섬유류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 수출관세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미국 및 유럽과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길 희망한다”고 밝혀 재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미국과 EU가 쿼티제 부활 등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위원회도 “대화와 토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일단 6월부터 수출관세가 폐지되겠지만 중국과 미국, EU 모두 경제전쟁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재협상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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