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7시 다운타운 LA는 다른 대도시들처럼 붐비거나 화려한 네온사인을 볼 수 없다. 같은 시각의 서울이나 도쿄는 사람들로 붐비고 살아있는 도시처럼 느껴지는데 이 곳 LA는 아침 9시에서 저녁 5시까지 일을 한 정확한 샐러리맨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한산하다. 모두가 빠져나간 빈 건물들의 맥없는 불빛만이 텅텅 비어 있는 다운타운의 거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다운타운을 빠져 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면 몇 개의 붉은 신호등이 눈앞에 걸리면서 한둘씩 걸인들이 지나다니는데 항상 눈에 띄는 젊은 백인 걸인이 있다. 처음에는 빛나는 금발과 하늘색 파란 눈의 아름다운 청년이었을 것 같은데 매연 먼지에 온몸이 뒤덮여 지금 그의 모습은 흑인에 가깝다.
20대 중반을 겨우 넘었을 법한 사람을 놓고 잠시 짧은 고민이 인다. “흠, 이 일을 어쩌나?”
그냥 지나치자니 아쉬움과 죄책감이 생기고 돈을 집어주자니 마약에 찌들어 또 하루를 보낼 것 같고.
신호 대기에 걸려 서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동일한지 검은 손으로 하얀 플래스틱 컵을 내미는 그에게 창문을 열어 동전을 내어주는 이가 드물다. 순간 측은한 마음이 들어 꼭 밥이나 사먹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쌈지 돈을 건네준다.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안타까워하며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아무리 잘 사는 나라라고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어디를 가든지 걸인들이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신주쿠 역과 우에노 공원에 갔을 때도 많은 노숙자들을 보았다.
지금은 정부에서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 곳에서 종이 박스로 개인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아주 정확하게 네모진 깔끔한 모습에 놀랐었다. 일본은 거지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여름인데도 그들에게서는 악취가 풍기지 않아 공공시설을 최대한 잘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보통 LA의 노숙자들은 온 몸에 수년 동안 쌓인 악취로 정신이 번쩍 들게 지나가는 우리들의 코를 찌른다. 어느 여름이던가. 악취가 햄버거 체인점에서 너무나 심하게 나서 둘러보았더니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바르고 혼잣말을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가 천장에 달린 선풍기 바로 밑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보통 미국의 걸인이나 노숙자들은 정신이상자나 마약 중독자로 생각되는데 많은 일본의 노숙자들은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자라는데 놀랐었다. 정부의 부정에 대한 항거가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은 자신들의 나약함에 자포자기하고 그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꽤 된다고 걸인들을 대상으로 일하는 관계자가 귀띔해 주어 알게 되었다.
이에 비해서 한국에서 본 노숙자나 걸인들은 장애자들이거나 중년 아저씨들 아니면 초라한 노인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정부가 장애인들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 보조를 잘 해줄 수 없는 탓이라 그런지 후한 한국인의 인정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의 바구니에 꽤 많은 동전과 지폐가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천사의 도시 LA이다. 다운타운의 밤거리는 노숙자들의 세상이다. 각박한 인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천사들이 노숙자들인가?
LA에는 제법 커다란 한인교회들이나 불교사원 그 외에 많은 종교단체들이 있다. 모든 종교는 불쌍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자고 가르친다. 정부 기관과 한인 단체 몇 곳이 지원하여 그들을 돕고 있기는 하지만 늘어나는 노숙자에 비해 태부족인 지원과 봉사자들에게 일을 떠넘겨주고 하루에 한번쯤 만나는 그들에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아직도 다운타운을 벗어날 때 마주치는 그 파란 눈의 청년 걸인은 내 양심을 일깨워주는 천사나 성자의 모습으로 보여 내 마음 깊은 곳에 못 다한 숙제로 남아 있다.
토마스 오 소셜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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